필자만의 소감인지 혹은 국내에서의 상황이 유독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골든이어(Golden Ear)의 CEO 샌디 그로스(Sandy Gross)는 업계에서의 오랜 히스토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보인다. 그가 매체에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유가 되겠으나 설계와 디자인, 경영과 마케팅 전반에 관여하는 분주한 인물인 것도 상관이 있어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유사한 시기에 데뷔를 했던 넬슨 패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 또한 한동안 은둔자의 이미지가 강했으며, 개러지 데이를 거치면서 의기투합한 파트너들과 유수의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창안해 왔다는 점에서 특히 두 인물은 유사점이 많다. 샌디 그로스는 70년대 존스홉킨스 대학시절 자신의 집 창고에서 폴크오디오(Polk)를 시작한 이래(폴크오디오는 3명이 론칭),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를 거쳐 2010년 현재의 골든이어를 설립했다. 주로 2인 이상의 팀을 짜서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방식에 대한 노하우가 많은 공동창업 전문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몇 년 전 CEA(북미 소비자 가전 협회; CES 주관사)로부터 혁신경영자 상을 수상한 바 있지만, 샌디 그로스는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하이엔드 오디오 그룹에게 노출이 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주며, 그 대상 제품인 트라이톤 원(Triton One)에는 비로소 샌디 그로스 만큼의 신선한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Suspension of Disbelief ” 다른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그렇듯이 골든이어의 사운드 컨셉은 공간 속에 연주만을 남기고 자신은 사라지는 컨셉을 지향하고 있어 보인다. 샌디 그로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의심을 붙들어 매는 것(Suspension of Disbelief)’이야 말로 뛰어난 스피커의 핵심적 성능이며 실제와 같은 입체적인 이미징만을 남기고 스피커는 사라지게 하는 방식을 통해 구현된다고 했다. 실제 시청을 해보면 쉽게 수긍이 가겠지만, 골든이어의 제품들이 어떤 성향을 갖고 제작되었는지 미리 짐작해볼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미국의 스피커 제조사가 스테이징과 이미징을 특화시켜 제품을 설명하는 일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익숙한 내용이겠지만 골든이어가 차별화하고 있는 부분은 특유의 방식으로 넓은 대역(14Hz~35kHz)을 구사하면서도, 고성능 소형 모니터의 고유 영역인 생생한 스테이징을 띄워낸다는 데 있다. 마치 하나의 바디에 위화감없이 서브우퍼를 접합시키는 데 성공한 듯한 이런 자연스러운 대역 연결의 느낌은 그리 어렵지 않게 시청자의 관심을 이끌어 낼 만한 특색으로 보인다.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고급의 베이스는 결국 그 제품을 선택하게 되는 결정적인 덕목이 되기도 하지만, 뛰어난 해상도와 매끄러움이 결합된 중고역이 공존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은 오랜 오디오파일들에게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 트라이톤 멀티 유닛 시스템 " 골든이어의 2채널 라인업인 트라이톤 시리즈의 제품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기존의 포크오디오와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로부터 순차적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샌디 그로스가 제작한 제품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유닛을 복합적으로 사용한 멀티유닛 설계방식이다. 슬림한 직립 톨보이를 기조로 하는 ‘트라이톤 원’의 디자인은 전면에 6개의 드라이버 유닛, 측면에 4개의 패시브 라디에이터를 사용한 총 10개의 유닛이 투입되어 있어서, 가히 스피커 어셈블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제품이다. 특히 본 제품에는 어쿠스틱과 디자인은 물론 종종 JBL 등의 제품에서 보아온 자사 특허 유닛과 소재들이 곳곳에 투입되어있다. 구성 컨셉에 따라 트라이톤 원을 구분해보면 크게 세 개의 부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트위터를 중심으로 상하 가상동축 미드레인지로 구성된 중고역 영역, 두 번째 세 개의 직사각 우퍼로 구성된 베이스 영역, 세 번째 좌우측면 각 두 개씩 배치한 좀더 큰 직사각 우퍼의 패시브 영역 등의 3개 부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중고역 영역의 중심이 되는 노란색 주름진 트위터는 종종 엘락 등의 스피커에서 보아온 주름 리본 트위터로서 트라이톤 원에서는 특주 HVFR(High Velocity Folded Ribbon; 고속 폴딩 리본)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네오디뮴자석을 사용해서 고속으로 정밀한 반응에 능하며 고온의 배출효과가 뛰어나서 왜곡저하와 고해상도 음원을 매끈한 음색으로 방사시키는 품질에는 탁월한 유닛이다. 이 HVFR의 상하로 배치된 두 개의 5인치 미드레인지 유닛은 8갈래의 꽃잎 모양으로 된 동사 특허 MVPP(Multi-Vaned Phase Plug; 다중날개 페이즈 플러그) 디자인으로 제작되어 있다. 플러그는 물론, 콘의 디자인은 컴퓨터로 정밀 측정된 곡면에 따라 제작되어 있으며 다인오디오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캡톤(Kapton)사의 포머에 보이스코일을 감아서 발열효과를 극대화시킨 유닛이다. 특히 이 중고역 어셈블리는 별도의 오각형 구조의 공간으로 밀폐되어 있는데 상하 체임버 또한 밀폐되어 있는 듀얼 디스크리트 구조의 이 내부 인클로저는 트위터가 위치한 중앙으로 갈 수록 전후간 폭이 넓어지고 미드레인지 쪽으로 오면서 좁아지는 형태의 소위 디 아폴리토(D’Appolito) 디자인에 따라 설계되어서 해당 대역에서의 또렷한 음상 구현에 최적화되어 있다. 광대역과 초저역을 구사하는 본 제품에서 뛰어난 이미징을 얻어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예전 KEF의 B139 유닛을 연상케 하는 육상트랙 모양의 베이스 유닛은 5인치x9인치 면적의 직사각형 콘 3개를 사용하고 있는데 전후 진폭구간을 크게 잡은 소위 ‘Long Throw’ 설계로 제작되어 있다. 특히 본 베이스 유닛 부분은 액티브 방식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빌트인 서브우퍼’ 개념으로, 대역필터링을 통해 편성된 전용 서브우퍼를 전체 스피커 인클로저 내부에 수납시킨 컨셉으로 이해하는 게 옳아 보인다. 아직 다른 스피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제작자인 샌디 그로스의 40년에 걸친 설계 노하우가 가장 많이 발휘되어 있는 부분이다. 전체 제품 중에서 One, Two, Three 상위 세 가지 제품에만 적용되어 있는 이 방식에는 1600와트 대출력의 전용 포스필드(Force Field) D클래스 증폭 앰프를 스피커 바닥면에 부착시켜 작동하는데, 100Hz 이하를 콘트롤하는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와 접합시켜 상당히 의미가 큰 어플리케이션을 창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대가 되는 건 중고역 어셈블리를 콘트롤하는 메인 앰프의 선택폭이 넓다는 점인데, 상위 대역을 사용자가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구사할 경우에도 고유의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가 100Hz 이하의 대역을 ‘알아서’ 콘트롤하기 때문에 베이스를 충분히 그리고 조화롭게 드라이브할 수 있을 것을 보인다. 예를 들면 공간에 따라서는 소출력 진공관앰프로 중고역을 드라이브하고 액티브 시스템으로 베이스를 드라이브하면 빈티지 시스템에서나 가능하던 광대역 멀티앰핑의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액티브 우퍼는 AV 시스템으로 운영시 스피커 뒷면의 RCA(LFE)입력을 통해 멀티채널 앰프의 서브우퍼 입력을 받아 서브우퍼 신호만을 별도로 출력할 수도 있도록 제작되어 있다. 측면 벽 양쪽면을 모두 사용하는 4개의 패시브 라디에이터는 정면에서 큰 진폭으로 작동하는 3개의 우퍼를 가장 적절히 사용하도록 설계한 절묘한 선택으로 보인다. 보다 자연스러운 위상의 접합효과와 전방향으로의 베이스 어쿠스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경험 많은 설계자의 선택으로 보인다. 폴리우레탄 폼 댐핑패드 재질에 기공섬유사를 섞어 만든 콘으로 제작되어 특유의 자연스러운 서브소닉 어쿠스틱에 기여하는 바 크다. 액티브와 패시브, 크고 작은 복합 인클로저,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 등을 기반으로 10개 유닛을 배치시킨 꽤나 복잡한 구성으로 제작된 본 제품은 오랜 동안 실전을 통해 축적되어 온 노하우가 의욕적으로 구현된 결과물이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이 스피커의 설계가 빛나는 것은 마치 단일 유닛처럼 작동하는 듯한 명쾌한 동작을 듣는 동안, 혹은 그 이후의 감흥 때문이다. " 염가의 품격 " 어느 정도 높은 가격이 품질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하이엔드 오디오시장만의 특성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저렴하면서도 뛰어난 제품들이 많이 실종되었다는 게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특히 국내 오디오파일들의 경우 하이엔드란 전지전능을 의미해서 디자인과 마감 또한 사운드품질과 최소한 같은 수준을 달성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향후 싱글족들이 늘어가면 조금은 다른 결과물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특히 남자의 잉여활동이자 전유물처럼 되어 있는 오디오는 여자들로부터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럭셔리’해야 한다. 그래야 집에 놀러온 누구에게 자랑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림하고 반듯한 직립형 톨보이 형태를 모서리마다 곡면처리한 디자인의 본 제품은 사실 굳이 천으로 감싸지 않고 전체 유닛을 화려하게 드러내도 될 것으로 보이지만, 단색으로 그릴마감을 한 경우는 산뜻한 일체감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첫 째, 천으로 덮지 않고 인클로저를 노출시킬 경우 별도의 마감비용이 들어갔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절감효과가 있다. 둘 째, 곡면으로 처리한 연속면을 부각시키는 일종의 스타킹과 같은 곡면장식 효과가 있다. 이 중에서 첫 번째 내용은 이 제품의 가격과 직결되어 있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이 제품의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엇갈리는 경우도 예상된다. 부언하지만, 어떤 사용자는 소리의 품격에 해당하는 화려한 디자인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 중량급 미니멀리즘 " 상기 특성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제품을 천으로 감싼 효과는 이 제품 혹은 골든이어의 제품 전반을 특징짓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애초부터 슬림한 스타일을 지향했던 디자인 컨셉을 부각시켜 우아하고 단정한 시각적 매력을 선사한다. 단지 사운드품질에 비해 화려하다거나 그다지 고급스럽지 못하다고 지적될 수도 있을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트라이톤 원의 스타일을 일괄하자면 심각하지 않은 심플한 미니멀리즘에 실린 중량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용자가 매일 닦고 부속물을 부가시켜가는 제품이라기 보다는 공간 속에 투입되어 붙박이장과 같은 고정물이 되는 컨셉에 가깝다.
한편, 제품의 각도를 변경해서 측면이 보이기 시작하자 제품의 규모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뒷 길이가 40센티를 넘어서는데 이때부터는 병풍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뒤로 기울어지지 않고 반듯반듯한 모양새는 산뜻하고 단정한 느낌을 흐트리지 않는다. 슬림하다는 느낌이 여전히 유효해서 미니멀한 사운드 스타일에 여전히 동화되어 위화감이 없다. 다만 얇은 레이어가 되었을 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본 제품은 광대역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는 점 못지 않게 대역간 비중을 거의 같은 크기로 잘 배정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어필한다. 큰 음량에서도 이 밸런스가 잘 유지되며 특정대역이 도드라지는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10개의 유닛이 투입된 복합 어셈블리의 구조를 구태여 의식하기 어려우며, 넓은 구간이 자연스럽게 들려서 딱히 어느 장르에서 더 좋은 재생을 한다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여러 대역 중에서 필자에게 우선 어필하는 부분은 역시 딥베이스 구간이었다. 일반적인 제품시에 접할 수 있는 흔한 대역구간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 품질적 접근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Proprius Christmas Album - Concerto for Organ in A major Proprius Christmas Album: Cantate Domino
위력이 대단한 게 아니고 실제 성당에서의 어쿠스틱이 눈에 보이는 듯한 독특한 베이스의 감동이다. 이 상태로 높은 대역에서의 음상 또한 명료하고 매끄럽게 떠오른다는 점 또한 이 스피커를 다시 보게 한다. 중역대 이상에서 느껴지는 입자의 촉감이 매우 상쾌하다. 원래 이 곡이 이상적으로 재생될 경우 느껴지는 차가운 입김과 같은 감촉이다. 어느해 겨울 시청했던 이래 오랜만에 이 곡에서 느껴지는 상쾌함이다. 그때 시청했던 스피커 또한 광대역을 장기로 했던 제품이었지만 가격은 트라이톤 원의 열 배가 넘는 제품이었다. 베이스가 잘 혼합된, 서포트하는 상태에서의 중고역은 특유의 안정감과 자연스러운 어쿠스틱으로 실제감을 더해준다. 특정 대역에서 특유의 반응이 있다거나 음색에 개성이 있는 스타일이 아니고 선명하면서도 예각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제품의 배치나 소스기기나 앰프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사용자의 운용에 따라 상당히 뉘앙스가 달라질 것으로 보였다. Livingston Taylor - Isn't She Lovely Livingston Taylor - Ink
Jennifer Warnes - Way Down Deep Jennifer Warnes - The Hunter
Rachel Podger - Violin Concerto No. 1 Bach: Violin Concerto
Los Romeros - Vivaldi Guitar Concertos Vivaldi: Guitar Concerto
Maurizio Pollini - Passion Beethoven: Sonatas op.2
" 보편적인 사운드가 고급화되었을 때 " 언젠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디오는 쉬워야 할 것 같고 그런 시절이 된 것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다수의 하이엔드 제품이 매우 은밀한 즐거움처럼 향유되어 왔다는 얘기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신은 특별해서 이 제품을 가져야 한다는 스페셜티 마케팅은 그런 소비자가 존재하는 한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하이엔드의 품질은, 할 수만 있다면 다수에 의해 공유되어야 할 시점 또한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품질을 적은 비용으로 구현하는 작업도, 그 컨셉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일도 쉽지는 않다. 오히려 하이엔드적인 관념 자체가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글: 오승영 (주) 다빈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