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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Notice

[리뷰] rega 안내서 2편 - 아날로그의 진심을 담다, RP10 Turntable (하이파이클럽, 2017년 7월)

[하이파이클럽] rega 2022-04-12 조회수 280


“아날로그의 매력”


LP 로 음악을 듣는 일이란 끊임없이 LP를 회전시키는 일이다. 나는 이런 종류, 즉 레코드 판을 회전시켜서 음악을 듣는 행위를 약 20년 넘게 즐겨왔다. 음원으로 들으면 훨씬 간편한데 왜 꼭 LP로 음악을 듣느냐 물으면 할 말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나도 물론 고해상도 음원을 즐기며 그 음질이 뛰어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음질 말고도 음악을 즐기는 일에는 많은 과정을 수반한다. 그것은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느냐를 결정 짓기도 한다.





커다란 LP 커버 디자인은 마치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얻은 것처럼 사람을 기쁘게 한다. LP를 꺼내 턴테이블 플래터 위에 얹어 놓고 톤암을 들어 카트리지로 LP에 기록된 음악을 읽어낸다. 카트리지 스타일러스가 소리를 읽어나가는 모습을 두 눈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음악이 살아있음을 느끼며 함께 생생하게 호흡하고 있다는 걸 온 몸으로 체험한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알려주는 음악의 진실은 사람을 감화시킨다.



몇 해 전 어느 작은 LP바에 들렀다. 영국 턴테이블 브랜드 레가의 대표 로이 간디가 내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해외 매체에서 보았던 그의 젊었던 시절 사진과는 달리 그동안 나이를 많이 먹은 얼굴이었다. 턴테이블에 대해 설명하고 몇 가지 음악을 직접 LP로 틀어주었다. 그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는 마치 레가 턴테이블을 닮았다. 칼날 같은 정교함과 냉철함으로 점철된 턴테이블이 아니라 무척 간결하고 실용적이며 친절한 인상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레가가 들려주는 음악적 표정이 그대로 그의 얼굴과 말투에서 그대로 전달되었다는 것. 사람이나 기기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가 플래그십 턴테이블 RP10”





개인적으로 레가 턴테이블은 거의 전부 사용해보았다. P2와 P3는 나의 아날로그 시스템에 몇 번이나 거쳐갔고 P5, P7 은 레가 턴테이블이 과연 어떤 소리를 목표로 하는지 명확히 알려주었다. 시간이 흘러 LINN, VPI 등의 턴테이블을 거쳐 이젠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레가 턴테이블은 나의 가슴 속에 아날로그의 첫사랑처럼 기억된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레가는 예전의 레가와 비슷하면서도 전체 라인업이나 톤암이 많이 바뀌어있다. 우선 전체 라인업에서 Planar 1, 2, 3 는 레가 사운드로 입문하는 시스템으로 과거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위로는 많은 변화가 엿보인다. RP6, RP8 그리고 RP10이라는 플래그십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출시되어 있다.





이번 리뷰는 플래그십 모델 RP10에 관한 것이다. 레가가 수십 년간 발전시켜온 턴테이블 제작 기술의 결정체다. 우선 턴테이블 베이스 디자인이 과거와 달라졌다. 베이스를 내/외부 두 개 부문으로 나누어 제작해놓았다. 이는 바닥 진동으로부터 플래터를 분리시키기 위한 설계로 보인다. 또한 더스트 커버 장착으로 인한 음질적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플래터가 장착되는 안쪽 베이스와 바깥쪽 베이스는 오직 세 점에서만 접촉된다. 하단 3점지지 발에 맞닿는 부분이다.



베이스는 아주 가볍지만 대신 과거보다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모터와 스핀들 베어링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노이즈를 최소화하기 위한 레가의 연구결과가 적용된 것이다. 베이스 구조는 1970년대부터 레가가 서서히 진보시켜온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보기엔 그저 얇고 심플해보이는 구조지만 진동 노이즈에 대해 세심하게 고려된 것이다. 얇은 페놀 수지 그리고 니트로갠과 폴리오레핀 폼 코어 등을 샌드위치 방식으로 압축시켜 만들어졌다. 이 독특한 소재는 레가가 약 3년여 연구 끝에 완성한 것이다. 오리지널 Planar 3의 그것보다 무려 일곱 배나 가볍다. 레가는 과거부터 무거운 베이스가 아니라 가벼운 베이스를 추구했다.





레가는 과거부터 플로팅이 아니라 리지드 방식이면서 얇고 심플한 디자인을 고수했다. 매우 무거운 플래터를 만들고 무거운 베이스로 지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얇고 가벼운 플래터에 진동이 아주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방식의 베이스를 추구했다. 진동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미국과 독일의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다.





플래터는 과거 강화 유리 등을 쓰지 않고 세라믹 소재의 특주 플래터를 사용한다. 대단히 정교하며 완벽히 평탄한 표면을 위해 다이아몬드 커팅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나는 이런 세라믹 소재 플래터를 사용하는 제품을 본 적이 없다. 대게 스핀들 축 끝에 세라믹 베어링을 사용하는 경우는 보았으나 대게 금속이나 POM, 아크릴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라믹 플래터는 내부의 서브 플래터와 두 개의 링으로 연결되어 회전하는 형태다. 모터 또한 플래터 하단에 장착되어 있다. 24V 싱크로너스 모터로서 이 모터는 외장 전원부에 의해 컨트롤된다. 외부 플래터를 걷어내면 보이는 모터 풀리는 CNC 머신으로 정밀 가공되며 트윈 벨트를 통해 내부 모터와 연결되어 회전한다.



내부 플래터는 곧바로 알루미늄 마운팅 플레이트로 이어진다. 그리고 톤암을 바로 이 플레이트 위에 안전하게 장착된다. RP10에 장착되는 톤암은 레가 사운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턴테이블 제조사가 레가에게 톤암 제작을 의뢰해 자사의 턴테이블에 장착해 판매한다. 오리진 라이브 같은 메이커는 원래 레가 톤암을 개조해 판매하기도 하며 성장한 메이커다. 레카 톤암의 범용성은 대단히 훌륭해서 어떤 턴테이블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 레가 턴테이블에서 가장 높은 레벨의 톤암을 과감히 채용한다. 플래그십이라고 해봤자 여타 하이엔드 메이커의 중급 이하 모델 정도의 가격대를 갖는 RP10은 자랑스럽게 레퍼런스 톤암 RB2000을 장착하고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셋업은 무척 편리한 편이다. 일단 톤암은 다이내믹 밸런스 톤암으로 수평을 잡은 후 우측의 다이얼을 돌려 맞추면 그만이다. 다만 별도의 침압계를 사용하면 더 편리하다. 안티스케이팅도 톤암 하단에 마련된 다이얼을 돌려서 맞추는 방식으로 간편히 맞출 수 있다. 카트리지는 레가 최상위 저출력 MC 카트리지 Apheta 2를 사용했는데 톤암 헤드셀 부분이 레가 카트리지에 최적화된 디자인으로 볼트 세 개를 조이면 끝이다. 만일 레카 카트리지가 아니라면 프로트랙터를 가지고 오버행과 오프셋 각도 조절이 필요하다. 포노앰프는 레가 Aria 그리고 웨이버사 W포노, 서덜랜드 PhD 등을 활용했다. 프리는 제프 롤랜드 시너지, 파워는 플리니우스 그리고 스피커는 다인 컨피던스 C4를 사용해 약 2주간 사용하며 음질적 특색을 살폈다.



Rickie Lee Jones - Chuck E.’s in love
Rickie Lee Jones


리키 리 존스의 ‘Chuck E.’s in love’를 들어보면 레가의 중역대가 가장 먼저 반긴다. 레가의 경우 전통적으로 고역의 뻗침이나 낮은 저역의 해상력은 부족하고 대신 중역대의 도톰한 질감이 전매특허였다. 물론 이번 RP10에서도 이런 중역대 표현력은 여전하다. 그러나 Apheta 2 의 영향력은 지배적이다. 고역대 챙글거리는 심벌과 낮은 대역을 탄력적으로 오가는 더블 베이스 등 대역이 상당히 넓어졌고 고밀도의 단단한 중, 저역을 들려준다. 레가에 대한 선입견은 이 단 한곡에서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Jeff Beck - Come Dancing
Wired


제프 백의 ‘Come dancing’에서 이런 레가의 특성은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셈, 여림 등 박자의 변화가 다이내믹하게 드러나며 리듬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과거 레가의 경우  이런 리듬감의 부족, 다이내믹 컨트라스트의 부족 때문에 메인 턴테이블 자리를 여타 하이엔드 턴테이블에 양보하곤 했던 것을 상기할 때 드라마틱한 변화다. 물론 Apheta 2 의 성능이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고 보이지만 RB2000을 장착한 RP10은 과거 P9보다 한 수 위다. 무게 중심이 높지 않고 중립적이며 묵직한 중역을 중심으로 진한 기타 음색도 잘 살려내준다.

TrondheimSolistene - Tchaikovsky String for Serenade
Souvenir part I


레가 RP10은 상당히 안정적이며 중립적인 균형감각을 중심으로 음색적으로 담백한 사운드를 내준다. 엷게 흩날리거나 또는 고역이 롤오프가 심해 먹먹한 느낌도 없다. 과거 Planar 시리즈나 하위 MM 카트리지의 조합이 내주던 소리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내가 사용중인 벤츠 마이크로 Glider 정도의 해상력은 충분히 따라왔다. 예를 들어 트론트하임 졸리스텐의 차이코프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에서 바이올린은 상쾌하며 꽉 찬 바디가 느껴지는 밀도와 진한 소릿결이 일품이다. 고무적인 것은 이런 해상력의 상승과 대역 확장에도 불구하고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로 등을 돌리지 않았다. 여전히 레가는 따스하며 온건한 음색을 손 안에 꼭 붙잡고 있다.

Pink Floyd - Time
Dark side of the moon

최근 재발매된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 중에서 대표곡 ‘Time’을 들어보면 여러 효과음들의 샘플링 사운드가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매우 다양한 악기들과 효과음들이 등장하는 이 곡에서 무대는 절대 좁지 않다. 특히 톤암의 주행 성능은 매우 우수해 수평, 침압, 안티스케팅만 제대로 세팅하면 LP 표면 안 쪽 그루브까지 무척 안정적인 밸런스와 해상도를 유지한다. 특히 팝이라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록 등의 음악에서 너무 얌전하거나 들뜬 소리를 내기도 하는 턴테이블을 많이 봐왔다면 레가는 반전을 보여준다. 당당한 드럼, 베이스, 사이키텔릭한 기타와 올갠 등의 표현은 음악에 더욱 깊게 침잠하게 만든다.

“총평”


레가 RP10은 그동안 꾸준히 진화해온 레가 아날로그 기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레가는 까탈스럽지 않은 성격에 과거 50년대 발매된 LP나 이후 발매된 재발매까지 포근한 음결과 담담한 표현력으로 사랑 받았다. 그러나 RP10에서 보여주는 레가의 그 성격 자체는 크게 변화하지 않은 채 성능 자체의 수직 상승을 보여준다. 물론 스피커를 예를 들 때 레가는 아큐톤이나 다이아몬드, 베릴륨 트위터를 장착한 화려한 현대 하이이엔드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하베스나 스펜더, PMC 등 정통 브리티시 사운드에 여전히 그 젖줄을 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상력은 몇 배 더 첨예해졌으며 좁았던 무대는 활짝 날개를 펴고 전/후, 좌/우로 그 폭을 확장시켰다. 뚜렷한 컨트라스트 대비와 명료한 비트, 리듬감 또한 새로운 레가 사운드를 대변한다. 여전히 도톰한 중역과 꽉 짜인 밸런스, 진한 밀도감은 브리티시 턴테이블의 메카 레가의 정통성을 대변하고 있으나 객관적 평가 기준으로 볼 때 성능의 진보는 확연하다. 결국 미국, 독일의 그것과는 기초적인 이론부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레가 사운드는 확실히 독보적인 세계를 확립했다고 평하고 싶다. 얼마 후 레가 대표 로이가 집필한 아날로그 관련 책이 출시된다고 하는데 무척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수십 킬로의 무게와 육중한 플래터, 자력을 통한 공중부양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여전히 가장 심플한 구조와 디자인을 고수하는 레가. RP10은 디지털이 알려줄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진심을 고집스럽고 순수하게 담아낸 턴테이블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