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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Notice

[리뷰] rega 안내서 3편 - 레가 아날로그, 그 진화의 서막 RP8 Turntable (하이파이클럽, 2017년 8월)

[하이파이클럽] rega 2022-04-12 조회수 258



주말이면 홍대 앞 여러 곳에서 버스킹 무대가 한창이다. 잠깐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넋을 잃고 무대의 뮤지션과 정서를 공유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 떠날 줄 모른다. 가장 단출한 악기 구성에 대부분 유명 히트곡이나 영/미권 싱어 송 라이터들의 곡 또는 가요까지 레퍼토리는 각양각색이다.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멋진 무대가 아니라도 좋다. 오히려 격식 없이 자유로운 무대와 세팅 속에서 뮤지션과 관중은 하나가 되어 감성을 나눈다. 아날로그란 이런 것이다. 디지털처럼 정확하고 깨끗하게 정제된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살과 살을 맞대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 아마도 최근 비긴어게인 같은 프로의 인기도 그런 인간미에 대한 목마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LP로 음악을 듣는 것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음악을 디지털로 변환하지 않고 널따란 플라스틱 판 위에 기록한 후 이를 카트리지 바늘로 읽어 들여 듣는다. 증폭은 하지만 변환하지는 않는다. RIAA 등의 커브 규격을 통해 이퀄라이징할 뿐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컴포넌트가 필요하다. 턴테이블은 물론 카트리지와 포노앰프, 케이블류 등 오디오 시스템 안에 웅크리고 있는 또 하나의 오디오 시스템이 아날로그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게 마치 전용 클래식 공연장 같은 곳에서처럼 격식을 차리고 조용히 음악에만 열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 나 또한 메인 턴테이블이 있지만 오히려 서브 시스템으로 음악 듣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물론 몰려오는 후끈한 더위도 한 몫 했다.





이 상황에서 레가는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RP10을 기점으로 시작된 레가의 신형 라인업들은 쉬운 세팅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제 소리를 내주는 기특한 존재다. 액세서리 하나, 전원 케이블이나 포노케이블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일체형이기 때문이다. 전용 전원부를 통해 전원을 공급받으며 33회전과 45회전도 전원부에서 선택할 수 있다. 과거 모델에서 모터 풀리에 건 벨트의 위치를 바꾸는 방식에는 이제 절대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게다가 최근 45rpm 으로 발매된 아날로그 프로덕션이나 뮤직 매터스, MFSL 등의 LP를 자주 랙에서 꺼내 듣는 요즘 간단한 속도 조정은 필수다.




“RB808을 장착한 준 플래그십 RP8”


RP10과 RP8은 베이스 몸체를 공유한다. 플린스 재질은 레가가 수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적용한 것이다. 과거 제품들처럼 슬림하고 가벼운 몸체지만 사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그 구조는 완전히 바뀌었다. 가벼운 니트로겐과 폴리올레핀 폼 코어를 샌드위치 방식으로 압축한 후 페놀 수지 두 개 층으로 마무리한 구조다. 약 3년 동안 개발한 이 구조는 레가가 공진과 그로 인한 노이즈에 대해 연구한 결과로 여타 하이엔드 턴테이블과는 대비된다. 대게 최근 미국이나 독일 턴테이블 메이커가 육중한 무게의 플래터를 만들고 하단 베이스까지 커다랗고 무거운 몸체로 만들어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히려 과거 레가 Planar 3보다 일곱 배나 더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 강도와 진동 특성은 더 높아졌다.





플린스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오히려 두 개로 나누어진 구조에 있다. 플래터가 올라가는 내부 플린스와 외부 플린스를 분리해서 디자인한 모습이다. 단, 전체 턴테이블 지지를 위해 3점지지 발이 단 세 점에서 내/외부 플린스와 동시에 접촉하고 있을 뿐이다. 진동이 일어나는 모터 그리고 음질적으로 미세하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더스트커버 등이 설치된 플린스를 서로 디커플링시켜 음질적인 왜곡을 줄인 것이다. 만일 원한다면 외부 플린스는 완전히 떼어내고 사용해도 무방하다.



내부 플린스에는 24V 모터가 장착되며 이 모터는 상단 플래터를 걷어내면 드러나는 서브 플래터 옆에 위치한다. 두 개의 벨트가 모터 풀리와 서브 플래터를 연결시켜 회전하는 방식이다. 외부에 장착된 메인 플래터는 RP10과 달리 유리 소재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한다. 이 플래터를 옆에서 자세히 보면 총 세 개의 유리 플래터를 합체시킨 것을 알 수 있다. 플래터가 만들어내는 공진 및 스피드 그리고 음질과의 상관관계를 고려한 설계로 RP10의 세라믹 재질과 대비되는 소리를 예상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톤암이 아닐까한다. RP8은 새롭게 개발된 RB808 톤암을 사용한다. 레가는 원래 톤암 전문 메이커로 이름을 날리며 일약 아날로그 전문 메이커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도 레가 톤암은 사용의 편리함은 물론 가격을 생각할 때 대안을 찾기 힘든 성능 덕분에 전 세계 턴테이블 메이커가 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동일한 레가 톤암을 사용하면서 가장 낮은 가격대에 판매되는 것은 레가 턴테이블이다. 그만큼 톤암 제조사만의 장점이 크다.





RB808은 수십 년 동안 숙련된 레가 엔지니어링 팀에 의해 개발, 제조된다. 기본적으로 다이내믹 밸런스 방식 톤암으로 후면에 무게 추를 통해 기본 균형을 잡고 우측의 다이얼을 돌려 정밀하게 침압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정밀한 조정을 위해서는 침압계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진보된 베어링과 스핀들 톨러런스 등을 자랑한다. 전체적인 조작이나 세팅 또한 매우 간편하다. 특히 레가 카트리지를 사용할 경우엔 오버행이나 카트리지 오프셋 조정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3점 조임 방식으로 완벽히 셋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RP8 테스트를 위해 레가의 신형 카트리지 Ania를 골랐다. 대게 레가 카트리지를 사용할 경우 Exact 나 Bias, Carbon 등 하위 모델을 생각하지만 레가의 MC 카트리지 성능은 레가를 다시 보게 만든다. 최근 RP10 리뷰를 위해 사용했던 Apheta 2 만 해도 과거엔 레가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다이내믹스와 해상력, 정위감을 얻을 수 있었다. 최상위 Aphelion 은 과연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번엔 Apheta 2의 트리클 다운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신형 모델 Ania를 선택했다. 0.35mV 정도의 저출력 MC 카트리지로 약 2g 침압을 주고 며칠 동안 시간 날 때마다 익숙한 LP 레퍼토리를 시청했다. 참고로 포노앰프는 레가 Aria 및 서덜랜드 PhD, 웨이버사 W포노 등을 사용했다. 이 외에 제프 롤랜드 시너지 프리 및 플리니우스 파워앰프, 다인 컨피던스 C4를 테스트에 활용했다.



Vashti Bunyan - Just another diamond day, Glow worms
Just another diamond day

브리티시 포크 싱어 바시티 버니언의 ‘Just another diamond day’에 이어 ‘Glow worms’등을 들어보면 무척 소박하면서도 싱싱한 디테일이 살아있다. 기본적으로 RP10과 어느정도 차이를 보이긴 하나 가격을 생각하면 매우 뛰어난 등급에 위치한다. 무겁고 육중한 쪽보다는 좀 더 폭신하고 담백한 음결이 특징이며 하베스의 P3ESR 같은 스피커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늬앙스가 느껴진다. 그러나 과거 고역 롤오프와 저역 해상력이 떨어지던 시절의 레가는 잊어도 좋을 듯하다. 본체와 톤암 수준도 올라갔고 특히 Ania 카트리지는 음악성에 더해 해상력, 광대역 특성이 돋보인다.

Johanna Martzy - J.S. Bach The Unaccompanied Violin Sonatas
J.S. Bach The Unaccompanied Violin Sonatas

RP8 과 Ania 가 만들어내는 음색엔 특유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떤 화려하고 극단적으로 한 편으로 치우친 착색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중립적인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어 어떤 특정악기의 음색을 왜곡하진 않는다. 다만 여전히 진하고 도톰한 중역대의 표현력은 레가를 대표한다.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어보면 담백하고 심지 있는 고역을 뽑아낸다. 과거 레가 중, 저가 턴테이블이 가요나 팝 등의 재생에 비해 클래식 현악 등에서 약점이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많은 변화와 함께 발전이 있었음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Van morrison - And it stoned me
Moondance

밴 모리슨의 [Moondance]같은 앨범에서 확실히 레가의 특징들이 명확히 드러난다. ‘And it stoned me’에서 ‘Moondance’에 이르기까지 어쿠스틱 기타는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생생하게 찰랑인다. 더블 베이스는 꽤 두텁게 들리며 드럼은 살짝 가벼운 느낌이지만 위축되거나 왜소하지 않고 당당하다. 음상이나 각 악기들이 마스킹되는 법도 없고 그렇다고 특정 악기를 중심을 공격적이지도 않게 악기들의 균형이 잘 잡혀있다. 너무 깔끔하고 깨끗해 자칫 냉정하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풍부한 하모닉스를 기반으로 따스한 온기와 풋풋한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The Dave Brubeck Quartet - Take Five
Time out

아날로그 프로덕션에서 발매한 데이브 브루벡의 [Time Out] 중 ‘Take five’에서는 잔향 특성을 알아볼 수 있다. 절대 예리하게 분석한 고해상도의 디지털 같은 소리가 아니다. 그보다 풍부한 잔향과 공간을 포근하게 감싸는 하모닉스가 일품이다. 저역은 부스트되진 않고 약간은 앙증맞은 드럼 재생음이다. 그러나 당당하다. 특히 조 모렐로의 드럼 솔로 구간에서도 전혀 위축되거나 과도한 피크가 없이 당차게 바닥을 때린다. 디지털 음원으로 들을 때보다 훨씬 더 정감이 넘치며 마치 현장음과 유사한 앰비언스가 느껴져 자연스럽게 알토의 선율과 리듬에 감정이 이입된다.



“총평”


레가는 격식을 차리고 온 신경을 집중해 음악에 몰입해 듣기보다는 일상의 한편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아날로그 사운드를 즐기게 해준다. 심플하고 견고하며 고장날 구석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개발부서가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낮은 불량률이 이를 방증한다. 과거엔 오랫동안 그 어떤 광고도 하지 않는 회사로 유명했다. 게다가 로이는 밴드 활동을 하며 레가의 여러 엔지니어는 취미로 음악을 한다고 한다.





나는 레가가 제작한 LP 한 장을 가지고 있다. [A Bend in the River]라는 이 앨범은 대표 로이 간디가 엔지니어를 맡아 제작했다. 심지어 그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앨범이다. 더불어 레가의 천재적인 엔지니어로 불리는 테리 베이트맨이 스튜더 A-80 릴덱으로 녹음한 마스터를 사용했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체계 그리고 음악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레가 RP8에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젠 현대 고음질 녹음에도 충실히 적응하는 해상력과 정위감을 뽑아내주고 있다. RP8은 레가의 전통을 기반으로 최신 하이엔드 아날로그의 조류를 받아들인 진화의 서막 위에 서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