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News & Notice

[리뷰] rega 안내서 4편 - 따스한 고해상도, Apheta2 & Ania Cartridge (하이파이클럽, 2017년 8월)

[하이파이클럽] rega 2022-04-12 조회수 259





“아날로그 전도사”


사람의 모든 감성은 아날로그적이다. 특히 음악은 사람의 감성과 직결되어 그 재생 과정이 음악을 느끼고 평가하는 결과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아날로그는 디지털의 무한한 편의성과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탱해주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등 여러 산업이 존재할 때 가능한 일이다. 영국의 레가는 그 중심에 있었고 디지털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산업을 지배해나갈 때조차 이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최근 레가의 대표 로이 간디는 ‘A Vibration Measuring Machine’이라는 책을 발간해 그 동안 레가의 발자취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그는 단지 호사가의 주머니를 노리는 고가 하이엔드가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대에 더 많은 대중에게 아날로그 사운드를 전파하기 위해 레가를 운영한다. 그는 단지 사업가가 아니라 아날로그 전도사다.





1970년대부터 레가의 정체성은 확고했다. 쉽고 편리한 사용, 어디에 두어도 모나지 않는 심플한 미니멀리즘 디자인,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적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가격적 합리주의.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아날로그 시스템을 즐겨오면서 누군가 턴테이블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항상 입버릇처럼 레가를 추천한 이유다.





전 세계에서 현재 턴테이블을 직접 제조하는 메이커는 많다. 그러나 톤암을 직접 만들어내는 회사는 많지 않다. 그만큼 정교한 정밀 공정은 물론 능숙한 제조 인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턴테이블 메이커가 현재 레가 톤암을 장착해 출시하는가 하면 옵션으로 레가 톤암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가장 신뢰할만하면 가격을 생각할 때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카트리지까지 만들어내는 회사는 손가락 안에 꼽을만하다. 뿐만 아니라 레가는 입문기부터 하이엔드 모델까지 넓은 가격대에 다양한 제품들을 개발, 포진시키고 음악 애호가와 오디오파일 양쪽을 모두 힘껏 껴안고 있다.




“하이엔드 카트리지”





레가의 카트리지에 ‘하이엔드 오디오’라는 말을 붙인다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최상급이라고 해도 여타 하이엔드 카트리지의 중급기 정도 가격표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폰, 벤츠마이크로, 다이나벡터에서부터 반덴헐, 라이라, 고에츠, 이케다 등 기라성같은 하이엔드 카트리지 메이커가 여전히 생존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가의 다른 모든 제품들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음질만큼은 하이엔드 카트리지에 근접하고 있다. 시작은 Aphelion, Apheta 등의 카트리지였다. 기존에 레가가 고집했던 MM 방식에서 탈피해 저출력 MC 카트리지로 출시된 모델이었다. 그리고 이제 Apheta 2 그리고 Ania 카트리지가 우리 앞에 ‘레가’라는 브랜드로 소개되었다. 실제로 레가 공장에서는 가장 높은 기술력과 제조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최상위 라인업에 대해 별도의 하이엔드 오디오 제작 공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Apheta 2”





전작을 진보시켜 출시한 Apheta 2는 기존 모델보다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미세 조정을 거쳐 출시된 모델이다. 레가 턴테이블이 그렇듯 진동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로우 매스를 기본으로 한다. Apheta 2 또한 기존보다 절반 크기의 철제 크로스에 네오디뮴 마그넷과 코일을 넣었다. 무게는 더욱 줄어들었고 마름모꼴로 제작된 피봇에 캔틸레버를 장착시켰다. 소릿골을 추적하는 데 있어 더 많은 자유를 주는 형태로 몸체 자체는 공진에 가장 뛰어난 특성을 위해 통 알루미늄을 절삭해 정교하게 가공되었다.




 
레가는 서스펜션 시스템에 대해서도 기존 MC 카트리지의 댐핑 방식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일단 카트리지 바디와 피봇 홀 사이의 정확한 정렬을 통해 ‘Zero Tolerance’를 구현했다. 대신 가청 영역대 고역 공진을 유발하는 타이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발포 고무 또한 시간에 따른 열화를 의식해 사용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MC 카트리지에서 사용하는 타이 와이어나 고무 댐퍼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음질적인 충실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이는 데 성공한 것. 그 결과가 Apheta 2로서 세계에서 가장 작은 MC 제너레이터를 채용했으며 누드 형태로 다이아몬드 스타일러스를 사용하고 있다.




“Ania”


Apheta 그리고 최상위 카트리지 Aphelion 에 이르는 MC 카트리지의 연이은 성공은 레가를 고무시켰다. 레가는 Apheta 2를 내놓으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고 레가는 고성능 MC 카트리지 개발해 주력했다. 그리고 이는 Ania 로 이어졌다. 레가의 목표는 분명했다. 상위 카트리지 Apheta 2의 성공 이면에 자리한 음질적 성능 및 기저의 엔지니어링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되 가격을 낮추는 일이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통 알루미늄 바디 대신 폴리머와 유리섬유를 합성한 PPS(Polyphenylene Sulphide)를 사용했다.





PPS를 사용해 극도로 정밀하며 내구성이 뛰어난 바디를 만들기 위해 EDM CNC 장비를 사용, 1마이크론(1/1000mm) 수준의 정밀 가공을 테스트했다. 결국 이런 일련의 테스트가 성공하면서 Ania 는 거의 절반 가격에 상위 카트리지 Apheta 2에 버금가는 MC 카트리지로 완성되었다. 이 외에 Apheta 2에서 설명한 ‘Zero Tolerance’ 피봇 홀 가공 및 타이 와이어, 고무 댐퍼 등의 생략 등 대부분의 엔지니어링을 공유한다. 스타일러스의 경우 다이아몬드를 활용한 타원 형태 팁을 사용하고 있다. 스피드, 투명도와 탁월한 저역 해상도와 다이내믹스를 기대할 수 있다.




“따스한 고해상도”


레가 카트리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편견을 버려도 좋다. 적어도 Apheta 2와 Ania 라는 두 개 카트리지에서 레가 사운드는 더 넓은 다이내믹레인지와 더 높은 해상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레가의 그 따스한 중역 에너지를 손상시키지 않는 경계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시소를 타고 있다.



Kenny Burrell - Tres Palabras
Bluesy Burrell


아날로그 프로덕션즈에서 최근 재발매한 케니 버렐의 [Bluesy Burrell] 중 첫 곡 ‘Tres Palabras’을 들어보자. 레이 바레토의 콩가와 에디 로케의 흥겨운 리듬 파트 위로 타미 플래나건의 피아노는 살랑대는 밤바람처럼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든든한 중, 저역 리듬파트 덕분에 탄탄하고 차분한 밸런스를 만들어준다. 이후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프레이징을 가볍게 읽어나가는 케니 버렐의 기타가 이어진다. 압권은 눈물을 흩날리는 듯 불어재끼는 콜맨 호킨스의 태너 색소폰이다. 중, 고역에 걸쳐있는 색소폰은 지난여름을 추억하듯 풍부한 하모닉스로 감성에 호소한다.



Lee Bu Young - Song of Michel Legrand
Song of Michel Legrand


이부영의 [Song of Michel Legrand]는 이부영의 보컬, 박윤우의 기타, 여현우의 클라리넷, 색소폰이 중심이 된 간결한 구성의 녹음이다. 여러 곡들을 들어보면 음색적인 부분에서 각 악기들, 그러니까 기타, 색소폰 등 각 악기의 질감이 매우 실체적으로 드러난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마친 새하얀 화선지에 먹으로 난초를 그리듯 여백이 살아있다. 악기들이 난잡하게 섞이지 않고 모두 각각의 음색이 싱싱하게 살아있다. 악기뿐만 아니라 녹음한 공간의 이미징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싱싱한 홀톤이 음악을 더욱 실체감 넘치게 조망해준다.



Jennifer Warnes - The Hunter
The Hunter


Apheta 2 및 Ania 카트리지 모두 대역은 무척 넓어 피아노, 비브라폰, 바이올린 등의 고역 재생에서 탁트인 개방감을 보여준다. IMPEX에서 발매한 제니퍼 원스의 [Hunter]에서 펼쳐지는 맑고 질감을 잘 살린 중역은 압권이다. 마치 전면에 가수가 노래를 하는 장면이 또렷하게 펼쳐지는데 무대 뒤편으로 숨어 속삭이는 듯한 느낌도 아니며 너무 앞으로 나와 귀에 대고 소리치는 표정도 아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그대로 깊고 또렷한 음상과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중역대는 마치 하베스, 스펜더, ATC같은 느낌과 비유할 수 있으나 고해상도의 고역이 더해져 답답하지 않고 상쾌하다.



The O-Zone Percussion Group - Jazz Variants
The Percussion Record


다이내믹스는 반덴헐 XGP 계열처럼 광대하진 않으며 밝다기보다는 조금 차분한 편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내가 사용하고 있는 벤츠마이크로 Glider 와 유사한 음조를 만들어낸다. 특히 도톰한 중역에 더해 무게감 있는 저역은 빠른 비트의 재즈나 타악들의 향연에서도 흥겨운 표현이 좋다. 록은 물론이며 테스트용으로 자주 활용하는 오존 퍼커션 그룹의 ‘Jazz variants’ 같은 곡에서도 타이트하고 육중한 저역을 만끽할 수 있다. 리드선을 은선 계열로 바꾸면 더 좋을 듯한데 레가 톤암은 교체가 쉽지 않아 아쉽다.




“총평”





레가 Apheta 2 와 Ania 카트리지는 현재까지 레가가 끈질기게 고집해온 MM 방식에서 탈피해 MC 카트리지로 도전한 카트리지들이다. 이미 Aphelion 이라는 최상위 레퍼런스 카트리지가 존재하며 Apheta 는 발매 이후 레가 팬들은 물론 레가 톤암을 사용하는 많은 아날로그 오디오파일을 즐겁게 해주었다. 사실 성능으로 볼 때 Apheta 2만 해도 가격 대비 성능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로이 간디의 합리적인 가격 정책은 Ania 까지 출시하게 만들었다. 사실 출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볼 때 R&D와 제조 비용 면에서 절대 Ania 가 Apheta 보다 크게 낮지는 않을 것 같다 . 분명 몇 가지 면에서 Apheta 2가 상위 제품으로서의 면면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러나 하이엔드 턴테이블이 아니라면 Ania 만으로도 MC 카트리지의 매력을 즐기기에 별로 부족해보이지 않는다. 레가 MC 카트리지는 합리적인 가격대 MC 카트리지를 원하던 오디오파일에게 두 손 들어 환영할만한 제품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