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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Notice

[리뷰] rega 안내서 5편 - 레가 사운드의 분수령, Aria Phonostage (하이파이클럽, 2017년 9월)

[하이파이클럽] rega 2022-04-12 조회수 275

어젯밤의 취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일요일 아홉시. 해장도 하지 못한 채 우유 한잔으로 속을 달랬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대문을 열고 나가니 어느새 서늘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택시를 타고 약 십여분 걸려 부랴부랴 도착한 곳은 LP 세일을 하는 어느 오래된 가게. 부스스한 머리에 초췌한 얼굴을 하고 LP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미 그 곳엔 20대 젊은이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꽉 차 있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었다. 어디에서 다들 웅크리고 있다가 일요일 아침 댓바람에 달려들 나왔는지 참 부지런도하다.





열 댓장을 골라 집으로 돌아와 처음 들은 곡은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다. 팝, 록 LP가 대부분이었던 틈바구니 속에서 대어를 건지듯 건져 올린 그의 2집 앨범. 가요 LP가 흔했던 당시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지만 나의 위시 리스트에 있었던 LP였기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집어 들었다.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고 가는데...


음악은 무심히 흘렀고 마치 가수와 담소를 나누듯 시간은 흘렀다. 일요일 오후는 그렇게 아쉽게 흘러갔다. 마침 새로 구입한 영국산 레가 턴테이블과 레가 카트리지는 때로는 음울하게 때로는 비애와 성찰을 담아 증폭시켜주었다. 치열한 시대를 울부짖었던 딜런보다도 더 그립고 아득한 노래들이 레가의 담백한 소릿결에 실려 가슴을 어루만졌다.



“레가 Aria“


최근 오랜만에 레가를 다시 만났다. 레가 RP10 턴테이블에서 RP8같은 모델 그리고 Apheta 2와 Ania 카트리지 등은 기억 속의 레가보다 몇 단계 더 성장했다. 그러나 몇가지 MM카트리지와 포노앰프 등을 들어보면 역시 레가는 변함없는 사운드 철학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진화했고 성장했다. 방금 동네 목공소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낸 듯한 캐비닛에 앰프 볼륨을 크게 올리면 찢어질 듯 약해보이는 진동판. 하지만 그 소박한 디자인의 레가 스피커가 들려주는 포크 음악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시디피는 또 어떤가? 레가 플래닛 그리고 귀여운 우주선을 줄여 미니어처로 만든 듯한 후속기 레가 플래너 2000은 작고 귀여운 음악의 전도사였다.





이젠 레가라는 이름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을 법한 DAC는 물론 시디피와 앰프, 턴테이블 등이 마치 급격하게 성장한 사자처럼 사뭇 늠름함이 비친다. Aria을 보았을 때 두터운 섀시와 늠름한 모양새는 레가 같으면서도 레가 같지 않은 포름으로 듬직했다.




 
크기는 일반적인 앰프의 절반 사이즈 정도다. 정확히는 좌/우 넓이가 22mm, 깊이가 32mm, 높이가 80mm 로 앞은 좁고 뒤로 긴 형태다. 전면에서 보았을 때는 약간의 곡선으로 휘어진 디자인과 둥글게 깎아지른 모서리가 레가 풍의 디자인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좌측엔 전원스위치, 우측엔 입력단 선택 기능이 스위치 식으로 마련되어 있다. 다름 아닌 MM 과 MC 카트리지에 모두 대응하며 입력단을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턴테이블을 두 대 운용하거나 톤암을 두 개 달아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무척 요긴한 방식이다.





내부 설계는 레가의 아날로그 증폭 기술과 전원부 설계가 꼼꼼하게 적용되어 있다. 레가 포노앰프를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과거 플래그십 포노앰프 IOS 나 엔트리급으로 사랑받았던 FONO같은 모델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IOS 는 단종되었고 FONO는 MM/MC 각각 별도의 모델이 출시되었으며 이보다 더 상급으로 Aria 가 플래그십 IOS를 대체했다. 기능적으로는 스테레오 LP 재생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능을 포함시켰고 MM/MC 입력을 아예 따로 분리해놓았다.





내부는 여느 포노앰프보다 커다란 크기만큼 내부도 꽉 차있다. 일단 포노앰프에는 과분할 만큼 커다란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사용해 리니어 전원부를 설계했다. 내부 설계에는 어떤 디지털 관련 서킷도 보이지 않는 풀 아날로그 타입이다. 알루미늄 섀시는 RFI/EMI 노이즈로부터 내부 서킷을 보호해준다. 아주 미세한 신호를 전송, 증폭하는 포노앰프의 설계는 디지털보다 더 섬세한 신호 전송 경로 설계가 필요하고 레가는 철저히 대비한 모습이다.





MM 과 MC 입력단은 단지 회로는 공유하고 입력단만 나누어 놓은 얄팍한 설계가 아니다. 서킷 자체가 독립되어 있다. 일단 MC 단 회로의 경우 저노이즈 FET 타입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병렬 회로로 구성했다. 한편 MM 스테이지 회로는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사용했다. 더불어 좌/우 채널의 전원부를 따로 구성해 성능을 최대화시킨 모습이다. 니치콘 커패시터 외 폴리프로필렌 커패시터 등을 활용해 디스크리트 방식으로 꼼꼼하게 정석으로 설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MM 과 MC 각 카트리지 타입 그리고 여러 다양한 메이커에서 출시되는 카트리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세팅을 지원한다. 우선 MM 같은 경우 1000pF, 2000pF, 3200pF, 4200pF 등의 커패시턴 스 조정이 가능하다. 한편 MC 카트리지에 대해서는 로딩 임피던스를 70옴, 100옴, 150옴, 400옴 중 선택이 가능하다. MM 입력단의 로딩 임피던스는 이란적인 47K옴, 게인은 41.4dB 정도며 이 때 RIAA 커브 정확도는 +/-0.2dB, THD+D 는 0.005% 로 우수하다. MC 의 경우엔 로딩 임피던스를 위처럼 네 가지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으며 더불어 게인을 두 종류 지원한다. 로우 게인을 선택하면 63.5dB, 하이 게인을 선택하며 69.3dB 로 증강 가능하다. 출력 전압은 1.35V 정도로 보편적인 프리앰프 또는 인티앰프의 입력단과 연결해 충분한 게인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이다.


“레가 사운드의 표준”


한동안 여러 레가 제품을 리뷰하면서 시스템 한 쪽에 레가 아날로그 시스템을 세팅해 듣고 있다. 레가 RP10은 플린스를 빼버리고 심플하게, 카트리지는 Apheta 2를 타이트하게 조였다. 포노앰프 Aria와 제프 롤랜드 시너지는 RCA-XLR케이블로 연결했고 플리니우스 파워앰프를 A클래스로 세팅후 다인 C4로 전류를 흘렸다. 포노앰프 게인은 High, 로딩 임피던스는 100옴으로 세팅하는 건 그리 귀찮지 않았다.



조동진 - 행복한 사람, 겨울비, 작은배
조동진 1집


Aria 포노앰프로 듣는 음악들은 하나같이 담백한 음결에 고역이나 저역보다는 중역 중심의 소리를 들려준다. 오랜만에 듣는 고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 ‘겨울비’, ‘작은배’에 이르기까지 담담하고 소탈한 음색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스며든다. 뛰어난 녹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레가 Aria는 해상력이나 곡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끝까지 집요하게 추적하지 않는다. 다 덮어두고 음악적이라는 다소 무책임한 표현을 끌어올리게 만든다. 때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나가는 고역과 단단한 저역보다 보플 거리는 리퀴드한 중역 하나가 더 많은 감동을 밀고 나오는 법이다.

Rolling Stones - Let it Bleed
Let it Bleed


하이 게인으로 세팅하긴 했지만 음량이 아주 충분하지는 않은 편이다. 따라서 마이텍 맨하탄 II 로 음원을 들을 때보다는 프리앰프 볼륨을 좀 더 올려야했다. 또한 볼륨을 어느 정도 높힐 때 다이내믹스가 잘 살아나는 편이다. 롤링 스톤즈의 [Let It Bleed]  중 ‘Gimmie shelter’ 같은 경쾌한 로큰롤을 들어보면 엷게 흩날리지 않고 중, 저역을 중심으로 베이스, 드럼 사운드가 묵직하게 부각되어 들린다. 샤프하고 깨끗하게 깔끔 떠는 최근 하이엔드 포노앰프와는 다르다. 오히려 배음을 충분히 살려 포근한 배음이 분진처럼 은은하고 두텁게 울린다.



Miles Davis - Round About Midnight
Round About Midnight


1969년 키스 리처드의 기타는 더욱 블루지했고 니키 홉킨스의 피아노는 힘이 넘쳤다. 믹 재거의 노래는 꿀이라도 한 병 들이킨 듯 끈적인다. 1958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Round About Midnight]을 MFSL 모노 버전으로 들어보면 중, 고역대역이 꽉 찬 밀도감이 이채롭다. 마일스의 트럼펫은 귀를 찌르지 않고 담백하게 울려 퍼지며 풍부한 홀톤을 마주한다. 폴 챔버스의 더블 베이스는 둥둥거리며 리듬을 타고 레드 갈란드의 피아노는 상큼하게, 존 콜트레인의 테너는 따스하게 끈적거린다. 통통 튀는 리듬감이나 투명함보다는 진한 배음 구조가 돋보이는 소리다.

Belanger & Bisson - Le vent souffle encore
Conversations


뱅상 벨린저와 앤 비송이 함께한 ‘Le vent souffle encore’에서 보여주는 토널 밸런스는 중립적이다. 앤 비송의 보컬과 후방의 어린 소녀의 목소리도 뚜렷이 전/후 위치가 구분되며 섞이지 않고 또렷하다. 무대는 전면으로 빠르게 쏟아지지도 후방으로 깊게 빠지지도 않는, 지극히 중립적인 전/후 레이어링을 만들어낸다. 특히 뱅상 벨린저의 첼로는 풍부한 울림으로 음악이 끝난 후에도 잔잔한 여운을 짙게 남긴다. ‘Crystal Clear’ 와는 반대편에 선, 요컨대 ‘Warm & Natural’ 사운드의 전형을 보여준다.



“총평”


나는 요즘 들어 상당히 다양한 포노앰프와 카트리지를 경험하고 있다. 더불어 메인 턴테이블로 사용 중인 트랜스로터 ZET-3MKII 턴테이블에 톤암을 하나 더 달았다. 카트리지를 하나 더 추가해 모노, 스테레오 등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포노앰프다. 소리가 마음에 들면 입력단이 한 개거나 진공관 포노앰프의 경우 MC에 대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능적으로 다양한 조정 폭을 제공하는 포노앰프는 대게 음질적인 면에서 흡족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레가는 모든 것을 적절히 공평하게 껴안았다.





레가 포노앰프는 개인적인 아날로그 시스템에 사용하거나 리뷰에 사용하는 등 몇 개월 동안 나의 시스템과 함께하며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레퍼런스급 포노앰프 성능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레가 IOS의 후계기면서 가격은 훨씬 더 합리적이고 기능적으로도 무척 뛰어난 편의성을 제공한다. 묵묵히 랙 한 구석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레가 Aria는 그 옛날 조동진 LP를 구입해 숨죽이며 듣던 그 때 레가의 담담하고 진솔한 표현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한 번 들이면 포노앰프는 그냥 잊고 LP를 자꾸 얹고 싶어지는, 그런 다정한 친구 같은 포노앰프가 Aria이다. Aria는 이제껏 축적되어 온 레가 사운드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