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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Notice

[리뷰] rega 안내서 6편 - Planar에 점화된 아날로그 열망, Planar 6 Turntable (하이파이클럽, 2017년 9월)

[하이파이클럽] rega 2022-04-12 조회수 246





디지털 기술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스마트기기들이 앞으로 전개해나갈 기술들이 어떤 것이 더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디지털은 편의성과 휴대성, 인터페이스를 개선했고 시간을 절약해주었다. 촉각을 다투는 도시 생활자들에겐 피로한 일상의 걸림돌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주면서 강력한 추진력을 얻었다. 한편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의 많은 것을 앗아갔다. 편의성이 좋아지면 질수록 사람은 게을러진다. 음악 듣는 일에서 이것은 서로 상충되는 의미를 갖는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음악을 소프트웨어가 찾아내 일깨워주기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곡들만 추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도 편리하다.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는 하루 종일 플레이리스트 만들기에 바쁘다. 사람들이 이젠 무언가 찾아서 듣는 것도 귀찮아진 듯하다. 아니 디지털 포맷과 시스템이 사람을 그런 방향으로 인도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CD가 LP를 대체하면서 생겨났던 음악 감상 패턴의 변화는 대표적이다. 12인치 LP 한면엔 20분 남짓 음악만 기록되어 있었고 A면이 끝나면 턴테이블 작동을 멈추고 뒤집어 B면을 들어야했다. 오토매틱 턴테이블이 아닌 경우엔 언제 끝날지 고려해 행동했다. 그 앞에 항상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혹여 원치 않더라도 음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CD는 몇 십 분이 되었든 마음 편하게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다른 일을 했다. 심지어 듣다가 말고 그냥 출타했다가 돌아와도 문제가 없었다. 종종 음악에 대한 집중력을 약화시켰다.


또 하나는 곡을 건너뛰는 스킵 기능이다. LP 등 아날로그 포맷이 메인이었을 때 스킵은 거의 없었다. 아날로그의 불편함은 편의성을 떨어뜨렸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앨범 전체를 모두 감상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히트 싱글 단 한 곡만 좋아하지 않았다. 앨범 하나에도 저마다 자신만의 애청곡이 따로 있었고 사연이 있었다. 카라얀의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러닝 타임을 CD 수록 시간의 기준으로 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LP로 들을 때 더 집중하게 된다. A면을 듣다가 끊기는 부분에 지체 없이 B면으로 넘어가야 음악 감상의 지속성이 손상되지 않기 때문. 그런 과정에서 음악에 대해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되는 소득도 있다.






“레가 아날로그”


레가 턴테이블은 이러한 LP 재생의 불편함을 절대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LP가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하면서 여러 메이커가 새로운 기능을 첨부하기 시작했다. 내부에 AD 컨버터를 추가해 디지털 출력을 한다던가 녹음 기능을 넣기도 한다. 스타트/스탑을 더 빠르게 하고 여러 장식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패션 상품처럼 앰프와 스피커를 넣기도 한다. 물론 이런 편의성을 갖춘 턴테이블이 LP 입문자를 늘릴 수는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그냥 아날로그다울 때 매력적이다. 기능적으로든 위에서 얘기한 음악 감상 패턴 면에서든. 레가는 아날로그의 지속성과 균질한 음악 감상 습관을 버리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턴테이블 앞에 꽁꽁 묶어두었다.




“레퍼런스 라인업의 트리클 다운”


레가 Planar 는 레가의 대표적인 라인업이자 현재 레가를 있게 한 기념비적 모델을 포함하고 있다. Planar 1, 2을 비롯 Planar 3 가 그것이다. 나는 아직도 새하얀 Planar 3를 구입한 후 기뻐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P5, P7, P9 등을 직접 써보거나 들어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턴테이블은 Planar 다. 첫 정이 무서운 법이다. 이번에 출시한 Planar 6는 완전히 새로운 Planar 의 진화를 보여준다. 2014년부터 시작된 레가의 턴테이블 라인업 리노베이션은 Planar에서 시작되었고 역시 Planar 3가 가장 먼저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어 Planar 1, Planar 2가 뒤를 이었다. 그런데 다음 숫자가 웬일인지 5나 7 등 전작이 아닌 6로 선택되었다. 6는 이미 레가의 레퍼런스급 제품 라인업 중 RP 시리즈로 출시된 바 있다. 레가는 Planar 시리즈에 6 숫자를 편입시켰다. 무척 과감한 결정이었다. 왜였을까 ?





Planar 6 는 RP 시리즈로 출시되었던 RP6와 많은 부분에서 다르며 조금만 비슷하다. 우선 Planar 6는 완전 수동 방식이며 외부 플래터 하단에 위치한 내부 플래터를 24V 모터가 회전시켜 작동하는 벨트 드라이브 형식이다. 톤암을 자사의 RB330 톤암을 장착하고 있고 별도의 파워 서플라이 겸 속도 조절 장치가 제공된다. 전원 어댑터는 레가에서 한국 시장을 위해 특주 제작해 공급하는 어댑터다.


일단 플린스를 보면 RP 시리즈처럼 반짝이는 재질이 아니다. 베이스는 폴리우레탄 소재인데 일반적인 물질이 아니다. 이는 우주항공 분야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Tancast’ 라는 소재로서 밀도가 128kg/M3 정도로 무척 견고하다. 이는 폴라리스 고밀도 합판(HPL)과 덧대어 있으며 이로써 매우 가벼우면서도 고밀도, 고강도 플린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레가의 공진에 대한 대책은 항상 이런 방식이다. 가벼운 질량과 견고한 소재 특성을 바탕으로 공진과 그로 인한 디스토션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플래터는 총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플래터는 외부 플래터 아래 알루미늄을 깎아 만든 것이다. 매우 안정적이면서 모터 작동시 발생할 수 있는 코깅 현상을 차단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모터와 직접 접촉하는 것으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기존에 비해 향상된 가공 퀄리티를 자랑한다. 상단에 얹는 플래터는 기본적으로 유리 재질이다. 그러나 옆에서 보면 두 개 유리 플래터를 접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단은 검은색, 하단은 투명 유리로 하단 유리가 더 두껍다. 이런 소재와 구조는 일종의 플라이휠 이펙트를 증가시켜 더 안정적인 회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더불어 모터로 인한 코깅 현상도 완화해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톤암은 레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RB300의 후속기다. 보기엔 과거 제품과 비슷해 보이지만 레가가 항상 그렇듯 겉으로는 별로 티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 결국 진화시킨다. RB330 으로 명명된 톤암은 기본적으로 알루미늄 파이프를 기본으로 무게추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며 매우 견고하고 말끔하게 가공되어 있다. 가장 핵심적인 개선점으로 베어링으로 보이는데 ‘제로 톨러런스’를 구현한 신형 베어링 덕분에 톤암 움직임은 무척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더불어 이 가격대에서는 보기 힘든 다이내믹 밸런스 방식 톤암이므로 스태틱 방식에 비해 음질적인 장점을 기대할 수 있다.





Planar 6는 과거 레가와 거의 모든 부분이 바뀌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Neo PSU 다. 이 모델은 전원 ON/OFF 및 33/45RPM 전환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 내부에 DSP 기반의 모터 컨트롤 회로를 내장했다. Neo PSU는 플래그십 RP10에 채용했던 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고정밀 크리스탈 클럭을 내장하고 DSP를 통해 매우 깨끗한 정현파를 생성해낸다. 따라서 33 또는 45RPM 등 선택한 플래터 회전 속도를 보다 정교하게 유지해준다. 더불어 후면에 속도 조절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미세 조절까지 가능하다. Neo PSU는 턴테이블 성능을 좌우하는 와우&플러터와 럼블 등에서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개선된 성능을 보장한다.



“셋업 & 사운드”


Planar 6 테스트엔 레가 Exact MM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이 가격대에서 가장 알맞지 않나하는 생각이며 Ania MC 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포노앰프는 레가 Aria 와 웨이버사 Wphono 1을 사용해보았다. 앰프는 캐리 CAD-300SEI 300B 진공관 앰프, 스피커는 케프 LS50 모니터 스피커를 사용해 여러 음질적 표정을 살폈다.



Jacintha - Georgia on my mind
Here’s To Ben


음상이 무척 또렷하게 잡혀 놀랐다. 레가는 중역 중심에 음색적으로 단아하고 점잖은 신사 같은 사운드로 인상을 깊게 남기지만 이젠 포커싱 등 정위감까지 상승했다. 예를 들어 그루브 노트에서 발매한 야신타의 LP 중 ‘Georgia on my mind’를 들어보다 무척 중립적인 밸런스 위에 정확한 음상이 인상적이다. 확실히 24V 모터는 강력하면서도 안정적이다. 45RPM 의 경우 33RPM회전 선택 후 45RPM 으로 넘어가야 안정적인데 바로 45RPM 으로 회전시켜도 금새 정속에 이른다. 야신타의 보컬 디테일과 담백한 음색이 매력적이지만 피아노, 베이스, 색소폰 등 여타 악기 표현도 생생하고 섬세하게 들린다.

Donald Fagen - Nightfly
The Nightfly

최근 자주 듣는 도널드 페이건의 [Nightfly]를 들어보자. 크리스 벨맨이 LP 마스터 커팅의 레전드 버니 그런드먼 마스터링 스튜디오에 마스터링한 버전이다. 오리지널 마스터 테잎을 마스터로 사용해 디지털 느낌이 거의 없으며 미세한 강, 약 세기 레벨이 절묘하게 조율되어 있다. 리듬감은 출중하다. 아주 무겁고 엄숙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얇고 엷지도 않다. 오히려 중후하면서 해상력이 살아 있는 사운드다. 어떤 팝, 록 LP를 감상할 때도 명징하고 밀도 높은 중역 디테일이 잘 살아 있어 맛깔 나는 재생음을 들려준다.



Eiji Oue -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Minnesota Orchestra

레가는 하이엔드 오디오가 추구하는 극도의 적막한 배경, 투명도, 엄청난 고해상도 등 오디오적 쾌감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VPI, 클리어오디오, 최근의 엘락과 정 반대편에 서있다. 하지만 RP10, RP8 그리고 Planar 6까지 들어보고 Apheta II, Ania 등 MC 카트리지를 들어보면 해상력과 정위감이 많이 상승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악기가 일직선상에 있는 듯한 답답함이 없고 꽤 입체적인 표현력이 증가했다. 이지 오우에 지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라흐마니노프 [Symphonic Dances]를 들어보면 과거 레가에 비해 확연히 넓어진 좌/우 무대와 깊어진 전/후 심도를 체감할 수 있다.

Arne Domnerus - Almighty God
Antiphone Blues with Sjokvist

스피드는 턴테이블의 알파와 오메가다. 단지 33RPM, 45RPM 회전이 가능하냐를 넘어 지속적으로 균질한 속도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스트로보스코프로 측정해보면 Planar 6의 속도 정확는 33, 45RPM 모두 정확한 세팅이 가능하다. 더불어 지속적으로 관찰해도 와우/플러터를 일으킬만한 속도 울렁거림이 보이지 않는다. 속도 문제는 보컬의 음정 및 악기의 하모닉스를 일그러뜨려 음색적 얼룩을 만들고 왜곡시키는데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없다. 대게 이런 부분은 관악기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데 아르네 돔네러스의 ‘Almighty God’에서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색소폰 블로윙에서도 음정이나 음색의 왜곡이 없어 매끈하게 풍부한 배음을 만들어낸다.




“총평”


레가 RP10과 RP8에 이어 바로 아래 모델 Planar 6는 레가에 대해 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무론 상위 모델보다 톤암 등에서는 하위급인 것이 맞다. 하지만 플린스는 분리형보다 이런 일체형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RB330이라는 레가의 엔트리급 모델임에도 과거 RB300 당시 성능보다 월등히 높아진 톤암 무브먼트와 트래킹 능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Neo PSU, 즉 새로운 전원부는 Planar 시리즈의 성능을 몇 단계 더 격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레가에 대한 음질적 편견 또한 상쇄시켜 주었다.


속도 정확성과 균질성 등은 음질적으로 악기 간 뚜렷한 하모닉스 특성 및 정교하고 넓은 음장으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Planar 6는 톤암 성능 외엔 거의 RP8에 육박하는 성능을 자랑한다. 만일 카트리지를 더 상위 모델로 적용한다면 아마도 더 이상 상위 모델에 대한 욕심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이 가격대 경쟁자 중 메이커를 불문하고 Planar 6는 탑 클래스의 반열에 올라 있다. Planar 에 점화된 레가의 아날로그 열망은 갈수록 완숙해지고 있다. Planar 6 는 이를 방증하는 표본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