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News & Notice

[리뷰] rega 안내서 7편 - 다시 돌아온 아날로그 시대를 위해, Exact & Elys 2 Cartridge (하이파이클럽, 2017년 10월)

[하이파이클럽] rega 2022-04-12 조회수 281


“음악이 간절했던 시절, MM카트리지”


시작의 발단은 슈어였다. 수십년간 MM 카트리지의 명맥을 이어오며 LP 사운드에 목말랐던 대중들을 울고 울렸다. 고급스러운 클래식 LP부터 고아한 가요 LP 재생까지 폭넓은 대중음악, 순수음악을 모두 책임졌다. 지금으로서는 별것 아닐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볼 사항이 아니었다. LP가 음악 재생의 메인 포맷이었을 당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카세트테이프 아니면 LP였고 당연히 LP가 프리미엄 가치를 누리던 시절이었으니까. 김추자의 농염하고 블루지한 보컬, 한대수의 거침없는 포효는 LP 아니면 즐기기 어려웠다.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을 해소해줄 유일한 출구는 LP였다.





당시 LP재생을 책임진 카트리지는 슈어가 압도적이었다. 대단한 점유율이었다. 대체 카트리지로서 오디오 테크니카가 있었으나 당시 슈어의 시장 점유율은 지금의 애플 정도로 대단했다. LP를 처음 접하는 입문기부터 고급형까지 모두 슈어 일색이었다. 친구 집에서도, 맥주 한잔 마시러 들른 골목길 LP바에서도, 온통 슈어였다. 44-7에서부터 97xe, 그리고 끝판왕급 카트리지 V15는 현재도 MM 카트리지를 대표한다. 그 중에서 V15의 인기는 대단했다. 학생 신분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재수생이 LP를 듣는데 V15를 탐내는 건 거의 죄악이었다. V15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권에 들어선 사람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V15의 종말은 단순히 MM 카트리지 하나의 종말로 가늠할 수 없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LP가 사라지고 CD가 세상의 음악을 모두 삼켜버릴 때 한 쪽에서는 V15가 서글프게 울었다. 더불어 V15를 서랍 속으로 넣어두고 CD를 구입하면서도 V15를 잊지 않았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카트리지를 소환했으나 전설의 V15는 단종되었고 쓸쓸히 암흑의 시대를 지내온 카트리지는 이제 쓸모없어졌다고 한탄했다. 운 좋게도 지코 등의 메이커가 바늘을 재생산, 무척 정교한 리이슈를 단행했고 전 세계 슈어 카트리지 오너들은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슈어의 시대는 엄연히 막을 내렸다. 적어도 V15 VxMR은 단종이다. 음악의 간절함 앞에 커다란 장벽이 놓여졌다.



“레가 시대의 개막“


수요가 있는 곳에 새로운 공급이 끊어질 리 없다. 여러 메이커들이 MM카트리지 개발에 집중했다. 그렇다면 아날로그 MM 카트리지의 알파와 오메가 슈어 V15의 적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오토폰, 골드링, 클리어오디오, 록산, 오디오테크니카, 그라도 등 끝없이 많은 경쟁자들이 새로운 MM카트리지의 신세대 주자를 키워 링 위에 올렸다. 그 중 레가의 존재는 유독 돋보였다. 처음 Bias 같은 MM 카트리지를 접했을 때는 너무 단출한 만듦새에 실망했다. 멋진 가드와 브러쉬가 합체되어 있는 슈어 같은 카트리지에 비하면 아무런 장식도 없는 일체형 바디는 뭔가 있어 보이길 원하는 오디오파일에게 허세 따위 필요 없다 일갈하는 듯했다. 하지만 소리는 그런 외관에 대한 인상과 실망을 말끔하게 위로해주었다. 약간 두루뭉술하지만 보컬의 풍성한 바디. 기타의 진한 밀도감 그리고 그루브가 넘실대는 베이스, 드럼 등 재즈와 록 음악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Exact & Elys2”


Exact 카트리지는 Bias 나 Elys를 훌쩍 뛰어넘는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꽉 찬 밀도감과 훨씬 더 넓은 대역폭과 해상력 등 이런 볼품없고 심플한 바디에서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제 Exact는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오리지널 Exact가 출시된 지 상당히 오랜 시간 침묵을 지킨 후 새로운 모델로 업그레이드되어 편의상 Exact 2로 부른다. 수평적인 조직체계와 함께 고객에 대한 배려를 사업철학으로 삼는 레가는 구형 모델이 너무 빨리 낡은 것으로 취급받게 만들지 않았다.





카트리지 스타일러스를 통해 긁어 들인 진동 신호가 마그넷을 움직이고 이 움직임이 코일로 전해져 전기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방식이 MM 카트리지다. 따라서 코일의 움직임을 통해 신호를 증폭시키는 MC에 비해 무척 수월하게 수 mV 전압을 만들어낼 수 있다. 대게 많은 오디오파일이 MC카트리지를 선호한다. 하지만 그만큼 MC카트리지를 통해 뛰어난 소릴 얻기 위해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MM은 MC가 표현하지 힘든 소리를 내준다. 반드시 MC카트리지만이 능사는 아니다. 레가 Exact 카트리지는 바로 마그넷을 움직여 신호를 전달하는 MM카트리지의 설계 원리 하에서 음질 특성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업그레이드시켜왔다.





일단 Exact 는 몸체와 헤드셀 부분으로 나누지 않고 일체형 디자인을 추구했다. 접촉 포인트가 만들어내는 에너지 저감 및 공진 등으로부터 오는 음질 저하를 막기 위해서다. 겉으로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상단을 보면 아주 매끈하고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소재는 보편적인 플라스틱이 아니다. 이른바 ‘Pocan’이라는 일종의 폴리머로 알루미늄만큼 견고한 소재며 그만큼 공진에 탁월한 특성을 가진다. 레가 Exact 카트리지 음질의 비밀 중 하나는 코일에 있다. 레가는 독자적인 생산 공정을 통해 자신들이 직접 코일을 제작, 적용한다.





중요한 건 많은 기존 MM 카트리지의 평균적인 코일보다 1/3 적은 와이어를 사용해 무게를 혁신적으로 줄였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마그넷과 코일을 통해 6.8~7.2mV 에 이르는 충분한 출력 전압을 얻고 있다. 또하나, Exact는 레가 MM 카트리지 중 플래그십답게 견고한 고가 캔틸레버를 사용하며 다이아몬드 팁을 사용해 음질적으로 가장 뛰어난 특성을 얻고 있다. 더불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타원형 디자인이 아니라 일종의 ‘Vital’타입 디자인이다. 다이아몬드 빌렛을 굉장히 정밀하게 깎아 만든 것. 이는 ZYX 등 고가 MC 카트리지에서 사용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레코드 표면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읽어들일 수 있다.





이어서 Elys 2는 레가 Exact 바로 아래 모델로 대부분의 설계 철학을 공유한다. 몸체와 상단 헤드셀 디자인 모두 동일하며 내부엔 새로운 평형 코일과 피봇 패드를 도입해 기존에 비해 해상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3점 장착 구조로 톤암 헤드셀과 결합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코일도 동일하게 사용하며 다른 모든 레가 카트리지들이 그렇듯 모두 레가 본사에서 수공으로 제작되며 이틀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 정밀한 검수 과정을 거친다. 다만 Elys 2부터는 Vital 다이아몬드 팁이 아니라 보편적인 타원형 스타일러스 팁을 적용한다. 출력전압은 6.8mV에서 7.2mV 로 Exact 카트리지와 동일하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레가는 카트리지 포장에 크게 돈을 들이지 않는다. 불필요한 치장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카트리지 자체 성능 향상에 거의 대부분의 예산을 투자하고 리테일 가격을 최대한 낮추자는 취지다. 그래서 Exact 나 Elys2 카트리지 모두 가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박스는 작은 플라스틱 박스로 동일하다. 박스 안에는 세 개 볼트가 들어가 있고 작은 종이에 스펙이 적혀있다. 침압은 모두 공히 1.75g 침압을 주고 레가 P6 턴테이블에서 톤암의 안티스케팅을 조절하면 끝이다.





안티스케팅은 아주 약간만 주어도 되며 톤암 오버행은 적어도 레가 턴테이블에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세 개 볼트로 정확히 조이고 리드선만 정확히 결선 후 레가에서 제공하는 카트리지 얼라인먼트 오프셋만 조정하면 그만이다. 레가 카트리지와 레가 턴테이블을 함께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음질은 물론 이렇게 간단한 세팅법이다. 참고로 테스트는 나의 개인 리스닝 룸에서 약 한 달간 이어졌다. 앰프는 캐리 CAD-300SEI 삼극관 인티 앰프 그리고 케프 LS50 및 레가 Aria 포노앰프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Rickie Lee Jones - We belong together
Pirates


레가의 모든 기기들이 그렇듯 대역 밸런스 쏠림 현상이 없어 상당히 안정적이며 편안한 톤의 음색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Exact 카트리지를 들어보면 중역 대역 디테일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향상되었고 밀도감이 높아 꽉 짜인 펀치력도 일품이다. 예를 들어 리키 리 존스의 ‘We belong together’를 들어보면 그녀의 보컬은 선명한 음상을 형성한다. 따스한 온도감을 바탕으로 음조 왜곡이나 착색 없이 대단히 안정적인 대역간 균형감이 돋보인다. 중반으로 넘어갈 때 터져 나오는 드럼도 당당하며 특히 많은 엔트리급 MM 카트리지의 두루뭉술하고 퍼지는 저역이 아니라 단단하고 깊이 있는 저역을 보여준다. Elys2 같은 경우 깊이감이나 밀도감은 떨어지지만 풍성한 맛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Chet Baker Sextet - Well you needn’t
Chet is Back


중역과 고역의 투명도는 지난번 리뷰 했던 레가 Ania 나 Apheta II 같은 저출력 카트리지처럼 높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충분히 대역폭이 넓고 고역도 열려 있어 일부 MM 카트리지에서 느껴지는 답답한 느낌 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트럼펫 같은 관악기에서는 고역과 함께 중역 퀄리티를 살펴보기 좋다. 예를 들어 쳇 베이커의 ‘Well you needn’t’ 같은 곡을 들어보면 확연히 각 카트리지의 특징이 구분된다. 고역은 Elys2 가 좀 더 기름지고 보플이 느껴지며 폴폴 불어오는 바람 같다면 Exact2는 기름기가 제거되고 외곽선이 좀 더 명료해진다. 중역은 꽉 차있어 텅 빈 느낌 없이 진한 소릿결을 들려주며 고역은 예쁘게 찰랑거린다.



Diana Krall - Temptation
The Girl In the Other Room


더블 베이스, 드럼 등 리듬악기를 통해 저역 하강 및 그 표정을 살펴보면 각 카트리지마다 등급 차이가 굉장히 타이트하게 조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 같은 경우 저역 윤곽이 뚜렷하면서 양감은 Elys2 에 비해 조금 줄어든다. 고역도 마찬가지지만 번인 타임이 30시간 정도 지날 때부터 고역은 더 생생해지고 저역도 동시에 좀 더 깊고 명확해진다. 예를 들어 제니퍼 원스의 ‘Way down deep’에서 북 소리 그리고 다이내나 크롤의 ‘Temptation’에서 크리스찬 맥브라이드의 더블 베이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Exact 의 따스하고 풍부한 폭신한 중역에 묵직하고 명료한 고밀도 저역은 다소 얇은 MC카트리지에서는 느끼기 힘든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한 마디로 무척 유연하고 포근해 감칠맛 나는 사운드다.



이정선 - 우연히 / 외로운 밤에 노래를 / 곁에 없어도 당신은
30대


레가 Exact 와 Elys 2 등 MM 카트리지를 P6에 장착한 후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음악은 다름 아닌 가요 LP다. 물론 과거와 달리 클래식 음악 재생도 개선되었으나 가요 녹음에서 장점이 뚜렷이 부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간만에 이정선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7집을 들어보면 ‘우연히’에서 ‘외로운 밤에 노래를’, ‘곁에 없어도 당신은’ 등이 쉴 새 없이 낭랑한 울림으로 리스닝 룸을 가득 메운다. 딱딱한 초고해상도에서 오는 피로감은 씻은 듯 사라지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음악은 풍부하고 달콤한 울림으로 가득하다. 정갈하고 은은한 음결에 지나치지 않은 해상력 및 딱 필요한 만큼의 밀도감은 음악을 더욱 정겹게 만든다. Elys2 가 MM 의 보편적인 특성에 부합하고 있다면 Exact 는 마치 고출력 MC 카트리지를 연상시키는 포퍼먼스를 지녔다.



“총평”





Exact 의 성능은 내가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벤츠 마이크로 Glider 에 근접한다. 물론 클래식 음악 재생에서는 정위감 및 고역 재생에서 밀리는 부분이 있으나 MM 카트리지만의 매력을 감안하면 굉장한 성능을 자랑한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스테레오파일에서 두 카트리지가 동일한 등급에 등재된 적이 있었다. 그들이 틀리지 않았다. 처음 50시간 정도까지는 기다려야 음질이 제 궤도에 오르므로 조금 인내심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부터 밀도감과 정위감 등에 있어 본 궤도에 훌쩍 올라타면 진한 아날로그 사운드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나는 결국 메인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의 두 개 톤암 중 하나에 Exact 카트리지를 장착하기로 했다. 메인 톤암에 이미 Glider를 장착했고 모노 카트리지를 추가하려고 했던 계획은 취소했다. Exact 로 듣는 음악이 모노 MC 카트리지가 주는 즐거움보다 더 클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슈어 V15 는 이제 살며시 기억 저 편에 묻어두어도 될 듯하다. 다시 돌아온 아날로그 시대를 위해 레가가 준비되어 있다. 합리적인 가격은 덤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