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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Notice

[리뷰] rega 안내서 10편 - 아날로그의 문을 두드리며, Planar 2 Turntable (하이파이클럽, 2017년 12월)

[하이파이클럽] rega 2022-04-12 조회수 261


1980년대 중반 CD가 카세트 테이프와 LP 등 아날로그 소스기기를 압살하면서 음악 포맷의 역사는 완전히 뒤엉켜버렸다. CD는 이후 HDCD, XRCD 등 다양한 광 디스크를 낳기도 했고 이후 SACD라는 대항마를 만났다. SACD는 현재까지 소규모로 이어지고 있고 일각에서는 블루레이 디스크에 24비트 고해상도 음원을 담아 판매하고 있다. 더불어 없어질 것 같았던 SACD도 소규모 클래시컬 뮤직 레이블과 에소테릭, 마란츠 등의 제조사와 함께 공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후 MP3 등 손실 음원의 광폭한 시장 확장이었다. 실용적이며 고음질이라고 설파했던 디지털은 이후 손실 음원으로 돌변하면서 그 지휘를 급격히 상실해갔다.




 
현재 국내 고음질 서비스는 24비트 PCM 이나 DSD를 제외하고는 CD 시절의 음질을 회복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뭔가 새롭고 급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그저 CD 정도 수준의 음질로 서서히 잃어버린 해상도를 복원하는 단계다. 그런 과정에서 LP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실로 아이러니하면서도 고음질을 향한 자연스러운 회귀 과정이다. 어차피 디지털 녹음이 아닐 바에야 본래 아날로그 녹음을 아날로그 포맷에 담아 만든 과거 LP를 구해서 듣자는 논리다.


급박하게 움직이는 업계의 대응은 두 가지였다. 일단 소프트웨어는 아날로그 녹음과 디지털 녹음 가리지 않고 LP로 발매하는 형태다. 비교적 저렴하며 메이저 음반사를 통해 대량 발매한다. 또 하나는 아날로그 마스터를 사용해 래커 커팅 또는 DMM 커팅 등으로 프리미엄 레벨로 발매하는 형태다. 소량 출시하며 값이 비싸다. 하드웨어 쪽도 이런 양극화가 심하다. 하이엔드 아날로그 마니아들을 위한 수천만 원대 턴테이블이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다. 톤암 하나에 수백, 카트리지도 고음질 재생을 원하는 소수 마니아를 타깃으로 한다. 또 한편으로는 갑자기 불어 닥친 아날로그 입문자를 위한 저렴한 턴테이블이다. 킥스타터닷텀 등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보면 마치 장난감 같은 턴테이블이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레가, Made in UK”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음질이 뛰어난 턴테이블은 흔치 않다. 단시간에 커다란 매출을 올려보다 아이디어 상품으로 기획한 제품들도 많으며 그렇다고 수백, 수천만 원에 이르는 턴테이블은 장벽이 너무 높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없지 않다. 바로 레가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수십 년 동안 톤암, 턴테이블, 카트리지를 만들어 온 턴테이블 전문 브랜드 레가는 이제 아날로그의 홍수 속에 더욱 그 가치가 빛나고 있다. 만일 전자동 기능에 화려한 유사 엔틱 디자인 등 오브제로서의 장식품을 원한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보기 바란다. 레가는 실용적인 노선 위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에 음질을 중요시하는 오디오파일용 턴테이블이다.



“Planar 2”


레가는 카트리지까지 합해 천만 원 정도의 레퍼런스급 턴테이블까지 제조 가능한 기술과 설비를 갖추고 있다. 값싼 제조비용을 위해 중국 OEM 등에 한 눈 팔지 않았다. 각각의 숙련공들이 한땀 한땀 정성들여 제작, 조립, 검수까지 마친 후 전 세계 딜러 및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문형 턴테이블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유지한다. 보통 제작자의 철학과 고집은 아니다. 이번 리뷰의 주인공 플래너 2만 해도 그렇다. 플래터 및 톤암이 상위 모델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아주 큰 폭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상위 카트리지 조합을 통해 얼마든지 성능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우선 톤암은 레가 자사의 RB220 모델을 장착하고 있다. 레가는 오랫동안 톤암을 만들어오면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톤암 제조사로 명성이 높다. 레가 톤암을 이 가격대 턴테이블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레가 턴테이블이기 때문이다. RB220은 스태틱 방식으로 과거 구형 레가 톤암을 완전히 새롭게 개선하고 설계해 완성한 결과물이다.



여러 잡다한 기능을 빼 가격 거품을 없애고 대신 모든 설계를 오직 음질을 위해 매진했다. 최신 특주 알루미늄 톤암 튜브로 기능이라고는 후방에 무게 추 조절 및 암 리프트 기능이 전부다. 바이어스, 즉 안티스케이팅 기능 또한 유저 편의성을 위해 오토매틱 방식을 적용했다. 베어링 하우징 또한 기존보다 강도는 더 높고 무게는 가벼운 것으로 적용해 자연스러운 주행 성능을 보여준다. 다만 레가의 모든 턴테이블과 마찬가지로 VTA 어댑터가 없는 순정 상태로는 톤암 높이 조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레가 외에의 카트리지를 사용할 때는 카트리지 높이를 고려해서 장착해야한다.





플래터 구동 축이 되는 허브, 즉 스핀들 베어링 또한 특허 받은 브라스 베어링을 적용했다. 약 11mm 규경으로 구동축에 잠재적으로 에너지가 저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플래터는 더욱 자연스럽게 정숙하게 회전할 수 있다. 레가 플래너 2는 내부에 스핀들과 연결된 플라스틱 소재 플래터가 있고 이것이 외부 플래터와 맞닿아 회전시키는 타입이다. 외부 플래터 재질은 엔트리급 모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유리 소재의 옵티화이트 10mm 플래터다.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모터는 새롭게 개발한 24V 저노이즈, 저공진 모터 어샘블리를 채용하고 있다. 내부 PCB 또한 과거 제품들에서 개선된 설계가 이루어졌다. 참고로 전원부는 DC 어댑터를 꼽아 사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는 레가에서 한국의 전원 특성을 고려해 특주 제공하는 것이다. 플래터와 톤암 등 중요 부분을 받치고 있는 플린스는 하이 클로스 아크릴 마감으로 상당히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셋업”


상위 모델과 달리 플래너 2부터는 인터케이블도 일체형이다. 이 가격대에서부터는 더 고가의 케이블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나 액세서리 등에 대한 부가적인 예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한편 카트리지는 본래 카본 카트리지가 장착되어 있지만 리뷰를 위해 좀 더 상위급 Bias 2 카트리지를 활용했다. MM 타입으로 타원형 스타일러스를 장착하고 있고 출력이 무려 6.8에서 7.2mV 가량 가능해 충분한 게인을 확보할 수 있었다. 턴테이블 세팅 자체는 여타 레가와 마찬가지로 무척 간단하다. 하지만 더 정확한 세팅을 위해 별도의 프로트랙터를 활용해 오버행 및 카트리지 오프셋을 조정한 후 며칠간 테스트했다.





테스트에 사용한 스피커는 토템 어쿠스틱 모델1 시그니처 그리고 앰프는 사이러스 신형 인티앰프 8 DAC다. 포노앰프는 레가 Fono MM을 사용해 순정조합으로 세팅, 레가 사운드를 좀 더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매칭했다.



“리스닝 테스트”



Susan Wong - You’ve got a friend
My LIVE stories


레가의 중심 대역은 누가 뭐라 해도 중역대다. 최근 여러 카트리지를 들어보면서 비교해보면 눈을 감고 비교해도 레가 카트리지와 레가 턴테이블 조합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어렵지 않게 구분해낼 자신이 있다. 예를 들어 수산 웡의 ‘You’ve got a friend’를 들어보면 중역 주파수 대역이 도드라져 무척 감미롭고 도톰한 보컬 표현력이 돋보인다. 더불어 피아노 및 기타도 중역대가 돋보여 손에 잡힐 듯 말랑말랑한 표면 질감이 감칠맛 나게 표현된다. 전체적인 중역 중심에 대역 중심이 하단으로 내려와 있어 날이 서거나 피곤한 느낌이 없이 편안하고 볼륨감이 느껴지는 소리를 즐길 수 있다.

Kyung-Wha Chung - Bach Partita No.2 in Dm, Sonata No.3 In CM
Bach


최근 아날로그포닉에서 재발매한 정경화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 파르티타를 들어보면 고역 특성을 진단할 수 있다. 레가는 비교적 고역이 순한 편이어서 특정 고역 레벨이 크게 상승하더라도 완만한 롤오프 특성을 보인다. 상위급은 쭉 뻗어나가는 쾌감도 보이지만 Elys2 부터는 좀 더 진하고 두께 있는 중저역과 편안한 고역을 들려준다. 최근 구입한 오토폰 2M Blue보다 고역은 아주 듣기 좋고 달콤하게 들리는 편이다. 살을 에는 듯한 쾌감은 덜하지만 대신 여유 있고 진한 소릿결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매만진다.



Jeff Beck - She’s a woman
Blow by Blow


저역은 꽤 단단하며 일체의 부스트 등은 느껴지지 않는다. 더 낮은 대역까지 선연한 해상력을 보여주면 쾌감을 더 올라갈 수 있고 이는 카트리지 교체를 통해 어느 정도 선까지 상승시킬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적당한 이완과 수축, 탄성이 어우러진 저역 표현이 풍부한 배음과 음악적 여운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제프 백의 ‘She’s a woman’을 들어보면 배경이 뿌옇게 얼룩지지도 너무 타이트하게 응축해 배음을 생략하거나 건조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이내믹스 표현이나 리듬감 모두 더하기도 빼기도 힘든, 무척 중용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Michael Stern - Saint-Saens Symphony No.3 Organ
Kansas City Symphony


스테이징 또한 아주 앞서거나 뒤로 숨어 왜소하게 속삭이지도 않는다. 청자와 적당한 거리에 오밀조밀한 무대를 그려낸다. 마이클 스턴 지휘, 캔자스 시티 심포니 그리고 얀 그레이빌이 오르간을 연주한 생상 교향곡 3번을 들어보자. 조금 높은 좌석에서 멀리 조망하면서 듣는 듯한 정위감을 형성해주는 녹음이다. 45rpm은 전용 PSU 없이도 꽤 정확한 회전 정숙도를 보인다. 나의 메인 턴테이블로 들을 때보다 무대는 좁지만 편안하고 담백한 느낌으로 듣는 오르간 심포니 또한 매력적이다.



“총평”


최근 홍대 앞에 오픈한 ‘팝시페텔’이라는 작은 음반 가게들 들렀다가 반가운 턴테이블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레가에서 한정 생산했던 유니온 잭 플래너 턴테이블이었다. 구형이기 때문에 플래터나 톤암 등 여러 면에서 신형과 차이는 있었지만 여전히 단아한 레가의 매력을 뽐냈다. 잠시 멋쩍게 처다만 보다가 브레드, 러브 앤 드림스의 [Amaryllis] 앨범을 들어보았다. 굴지의 국내 음반사 시완 레코드에서 1990년대 발매한 LP 다. 원래 음질이 좋은 LP는 아니었지만 CD가 아닌 LP로 듣는 ‘Out Of The Darkness Into The Night’는 감회가 남달랐다. 웅장하면서 목가적이며 때로는 싸이키델릭의 몽롱함이 공간을 풍성하게 감쌌다.


 
생산된 지 20여년은 지났을 법한 라이센스 LP며 1971년 녹음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음악의 에너지가 눈앞에 일렁거렸다. 녹음의 단점을 부드럽게 보듬어주는 관용적인 태도가 한눈 팔지 않고 음악에만 빠져들게 해주었다. 세상엔 초고가 하이엔드 턴테이블도 있고 그저 빈티지 오브제 같은 턴테이블도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이 정도 음질을 들려주는 턴테이블은 흔치 않다. 플래너 2는 특정 계급을 위해서만 봉사하지 않는다. 아날로그의 문을 두드리는 모든 이의 것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