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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ga Osiris - 야누스 같은 레가 플래그십에 흠뻑 취하다 (하이파이클럽, 2018년 1월)

[하이파이클럽] rega 2022-04-12 조회수 272





하이파이클럽에서 이색적인 리뷰 의뢰가 들어왔다. 인티앰프를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스피커에 물려 그 앰프가 얼마나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지 확인해달라는 것이었다. 솔깃했다. 더욱이 인티앰프는 실용주의 턴테이블의 명가 레가(Rega)의 플래그십 인티앰프 ‘Osiris’(오시리스) 아닌가. 물린 스피커도 이미 명기 반열에 오른 소너스 파베르의 ‘Guarneri Evolution’(과르네리 에볼루션)과 포칼의 ‘Diablo Utopia’(디아블로 유토피아)였다. 과르네리 에볼루션은 ‘질감형’으로, 디아블로 유토피아는 ‘해상력’ 스피커로 골랐음이 분명했다. 자, ‘Osiris’는 두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를 어떻게 울렸을까. 이번 리뷰는 이에 대한 필자의 리포트다.




"레가 Osiris, 기본 팩트 체크"


1973년 설립된 레가가 앰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인티앰프 ‘Elicit’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프리앰프 ‘HAL’(1995)과 ‘Cursa’(1998), 스테레오 파워앰프 ‘EXS’(1995), 모노블럭 파워앰프 ‘EXON’(1995)도 나왔었지만, 레가의 주력은 역시 실용주의 메이커답게 인티앰프였다. 특히 엔트리 모델인 ‘Brio’는 지금까지 총 4차례 업그레이드(1991년 Brio, 1996년 Brio2, 2006년 Brio3, 2011년 Brio-R, 2017년 Brio)해오며 전세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필자 역시 지난 2012년 하프사이즈의 ‘Brio-R’을 거의 1년여 동안 자택에서 즐겁게 사용한 기억이 새롭다.







이번 시청기인 ’Osiris는 2009년 CD플레이어 ‘Isis’(이시스)와 함께 레가의 플래그십 인티앰프로 출시됐다. CDP인 ‘Isis’와 매칭을 전제로 한 것 때문인지 레가 인티앰프에 반드시 내장됐던 포노단이 없다. 외관은 ‘사자의 신’을 뜻하는 모델명처럼 듬직하고 시크하기 짝이 없다. 무게는 25kg이나 나간다. CNC 머신으로 매끈하게 마감한 검은색 알루미늄 섀시에 짙은 와인빛으로 빛나는 표시창 글자의 조화는 포효하기 직전의 사자를 그대로 빼닮았다. 플래그십 인티앰프로서 Osiris가 레가 현행 앰프 중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표로 짚어봤다.







표에서 알 수 있듯이 ‘Osiris’는 기본적으로 8옴에서 162W, 4옴에서 250W를 내는 솔리드 스테이트 인티앰프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부터 플래그십 인티앰프를 내놓으면서 가졌을 레가의 결기를 느낀다. 필자 경험상 스피커를 마음껏 드라이빙하기 위한 솔리드 앰프의 출력 마지노선은 충분한 전원공급능력을 전제로 클래스AB 증폭 기준 150W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낮은 공칭 임피던스에 감도까지 낮은 스피커라면 더욱 그렇다. 뒤에서 자세히 쓰겠지만 ‘Osiris’는 4옴에 86dB밖에 안되는 ‘Guarneri Evolution’이 즐겁게 노래할 정도로 마음껏 울렸다. 8옴에 89dB 스피커인 ‘Diablo Utopia’는 아예 쥐락펴락 갖고 놀았다.





좀더 짚어보자. 파워앰프부의 전력증폭단(출력단)은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NPN과 PNP를 채널당 트리플 페어로 투입했다. 일본 산켄(Sanken)사의 200W급 대출력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채널당 8개(2개는 드라이빙 트랜지스터) 투입, 결국 푸쉬풀로 구동된는 클래스AB 증폭 앰프인 것이다. 전압증폭단(입력단)은 게인이 높으면서 고주파 특성이 좋은 캐스코드 차동증폭 방식을 썼다. 프리앰프부는 일체 증폭이 이뤄지지 않는 전형적인 패시브 타입. 볼륨은 알프스 블루 벨벳 포텐션미터다. 좌우 채널은 듀얼 모노 구조이며, 파워서플라이 역시 400VA 용량의 토로이달 전원트랜스를 1개씩 총 2개 투입했다. 커패시터 용량은 각 채널당 4만uF에 달한다. 인티앰프로는 어마어마한 물량 투입이 전원부에 투입됐음이 확인된다.



"Osiris의 설계디자인 = 캐스코드 1단 증폭, 트리플 패럴렐 푸쉬풀"

필자가 파악한 ‘Osiris’ 설계디자인의 핵심은 튼실한 전원부와 듀얼 모노, 그리고 캐스코드(cascode) 1단 증폭이다. 여기서 ‘1단 증폭’은 다이렉트 입력시 44dB나 되는 ‘Osiris’의 게인이 순전히 파워앰프부의 전압증폭단에서만 확보된다는 것이다. 즉, 프리앰프부와 파워앰프부가 사이좋게 게인을 나누는 일반 인티앰프와 달리, 프리앰프부는 볼륨 컨트롤(알프스 블루벨벳 포텐션미터)까지 포함해서 일절 증폭 메카니즘에 관여하지 않는다. 결국 증폭단수를 최소화함으로써 음의 순도를 그만큼 높이려는 설계방식인 셈이다.







그리고 ‘캐스코드’라는 것은 전압증폭단에 증폭률이 높으면서도 증폭의 직선성(linearity)이 좋은 캐스코드 방식(current follower)을 썼다는 얘기다. 캐스코드 증폭방식은 쉽게 말해 앞단의 트랜지스터는 전류증폭, 뒷단의 트랜지스터는 전압증폭을 담당토록 함으로써 1) 높은 증폭률과 2) 낮은 입력 임피던스, 3) 높은 출력 임피던스를 얻을 수 있는 증폭회로다(common base/gate amplifier). 이에 비해 ‘Elicit-R’이나 ‘Elex-R’에 채택된 에미터 팔로워 방식(voltage follower)은 에미터에서 출력을 꺼내 게인이 1이 채 안되지만 높은 입력 임피던스에 낮은 출력 임피던스를 얻을 수 있어 주로 버퍼 회로에 사용된다(common collector/drain amplifier).







이렇게 캐스코드 전압 증폭단을 빠져나온 신호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채널당 8개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투입된 출력단으로 들어간다. 잘 아시겠지만 파워앰프부의 출력단은 스피커를 실제로 구동할 수 있는 ‘힘’(전력)을 얻기 위해 앞단을 통과한 증폭신호에 대전류만을 실어줄 뿐이다(P = V x I). ‘Osiris’의 경우 트랜지스터를 더블 페어(달링턴 회로)를 쓴 레가의 다른 인티앰프와는 달리 트리플 페어(triple parallel push-pull)를 써서 전류공급 능력을 더 키운 점이 눈길을 끈다.







이상이 필자가 파악한 ‘Osiris’ 인티앰프 설계디자인의 핵심이며, 나머지는 플래그십다운 고급 부품과 보호회로를 투입했다고 보면 된다. 입력단에는 문도르프(Mundorf) Mcap 폴리프로필렌 커패시터와 알프스 블루 벨벳 포텐션미터(볼륨)가 투입됐고, 신호경로상의 바이패스 및 디커플링 커패시터로는 니치콘(Nichicon)사 제품이 사용됐다. 1조가 마련된 밸런스(XLR) 입력단에 입력트랜스가 별도로 마련된 점, 내부 배선재로 클로츠(Klotz)사의 저손실 동축케이블이 사용된 점 등도 눈길을 끈다.






"시청"


‘Osiris’ 인티앰프 시청은 똑같은 음원을 먼저 소너스 파베르의 ‘Guarneri Evolution’(이하 과르네리 에볼루션)으로 들은 다음 포칼의 ‘Diablo Utopia’(이하 디아블로 유토피아)로 바꿔 듣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소스기기는 웨이버사의 ‘W DAC3’이며, 룬(ROON)을 통해 타이달(TIDAL) 음원을 주로 들었다. 비교 시청이 끝난 후 필자가 메모한 두 스피커별 소리성향이나 특징은 이랬다. 이 메모만 보셔도 두 스피커에 번갈아 물린 ‘Osiris’가 얼마나 야누스적인 면모를 보였는지 눈치채실 수 있을 것 같다.

 
# 과르네리 에볼루션 = 표현력, 대역밸런스, 무게감, 묵직함, 에너지감, 음악성, 온기, 열기, 끈끈함, 배음, 잔향
# 디아블로 유토피아 = 오디오적 쾌감, 다이내믹 레인지, 고역의 청명함과 에어리감, 이미징, 사운드스테이징, 초저노이즈, 정숙도, 서늘함, 예리, 선연, 분명




Andris Nelsons - Shostakovich Symphony No.5
Boston Symphony Orchestra


먼저 과르네리 에볼루션으로 들어보면, 극도의 정숙도나 초저 노이즈보다는 녹음현장의 현장감이나 실체감이 더 두드러진다. 사운드스테이지는 아주 넓거나 깊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스피커에 대한 그립은 충분하다는 느낌. 스트레스 없이 음들을, 음원에 담긴 정보를 잘 뽑아내주는 스타일이다. 또한 배음이 풍성해서 음들이 헐겁거나 앙상한 느낌이 전혀 없다. 전체적으로 리퀴드하고 생생한 재생이어서 듣는 내내 편안했다. 피아니시모 파트에서 여린 음들을 모조리 긁어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디아블로로 바꾸니 그야말로 ‘오디오적 쾌감’이 두드러진다. 노이즈가 훨씬 더 적고 음수가 많으며 음끝이 선명하고 예리해진 것이다. 음들이 좀더 사뿐하게 스피커에서 튀어나온다. 풋워크가 경쾌하다는 인상. 거의 앰프 자체를 바꾼 듯하다. 베릴륨 트위터를 쓴 덕분인지 고역이 좀더 에어리하고 청명하게 마치 꾀꼬리처럼 노래한다. 스피커를 장악했다는 느낌은 이쪽이 더 강하다. 그러나 묵직함이랄까, 음들의 질량감이랄까, 이런 덕목은 과르네리 에볼루션보다는 못하다. 스피커에 따라 이렇게 야누스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것은 결국 두 스피커의 DNA를 제대로 해독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Duke Elington - Blues In Blueprint
Blues In Orbit


과르네리 에볼루션으로 들은 이 곡은 무엇보다 색소폰의 질감이 정말 좋다. 그 소리의 두께감과 사운드 구조, 소리가 나오는 그 찰나의 순간이 하나하나 잘 관찰되는 것이다. 각 악기의 음색이 기막히게 구분되는 것을 보면 ‘Osiris’ 프리앰프부가 아주 선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볼륨이 9시반 방향인데도 불구하고 베이스의 핑거링에서 느껴지는 펀치력은 거의 역대급이다. 막판 피아노의 잔향도 숨이 멎을 만큼이나 오래 간다.


디아블로 유토피아로 바꿔보면 갑자기 부밍이나 잔향감이 줄어드는 대신 극도의 해상력으로 승부를 걸고 있음이 명확하다. 음의 두께가 얇아진 대신 윤곽선은 또렷해졌고, 중량감은 줄어든 대신 이미지는 확실해졌다. 아까보다 같은 곡을 10년 후에 좀더 좋은 마이크로, 좀더 방음이 잘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 같다. 트럼펫의 경우 좀더 왼쪽 바깥으로 튕겨나간 느낌이 재미있다. 스피커를 달래가며 산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완전 장악해서 통째로 울려버리는 그런 느낌. DAC 자체를 업그레이드한 듯하다.




나윤선 - Ghost Riders in the Sky
Lento


아, 이 엄청난 킥드럼의 파워감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Osiris’+과르네리 에볼루션 조합이 들려준 소리가 완전 변했다. 스톱앤고, 구동력, 댐핑력이 급상승했다. 나윤선도 완전 자신감에 차서, 바로 필자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음의 윤곽선이 여리여리하지 않고 분명하고 굵어진 것이다. 그러나 디아블로 유토피아로 바꿔 들어보니, 아뿔싸, 킥드럼이 아예 시청실을 두들겨 팬다. 보컬 역시 보다 힘이 붙고 공격적이 됐다. 전체적으로 음압 자체가 높아진 느낌. 맞다. ‘Lento’ 앨범 자체의 녹음 게인이 높았고, 이를 ‘Osiris’+디아블로 유토피아 조합이 더 드러낸 것이다. 고역 파트에서 디테일은 확실히 지금이 낫다.

 


Gidon Kremer, Giedre Dirvanauskaite, Danil Trifonov - Rachmaninov Trio elegiaque No.2
Preghiera


과르네리 에볼루션에서 바이올린의 음들이 뽀드득뽀드득 거리며 흘러나오는 모습이 상쾌하다. 세 악기가 펼쳐내는 이미지는 홀로그래픽하고, 음들이 없는 순간에는 귀가 갑자기 멍해질 정도로 적막해진다. 앞에 나온 음들이 뒤에 나오는 음들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 앰프이자 스피커다. 디지털 음원 특유의 음들이 날리는 느낌도 전혀 없다. 피아노가 본격적으로 타건의 향연을 펼칠 때는 ‘Osiris’가 마치 큰 저수지 같다. 출력과 대전류를 가둬뒀다가 필요할 때 일시에 쏟아낸다는 그 숨은 저력에 깜짝 놀랐다. 디아블로 유토피아에서는 피아노 저역은 확실히 덜 떨어지고 에너지감 역시 약해지지만, 노이즈는 훨씬 더 적어서 피아니시모 파트의 표현력은 훨씬 더 높게 느껴진다.



"총평"


‘Osiris’ 인티앰프로 두 스피커를 비교시청하는 내내 즐겁고 흥분했다. 물론 ‘Osiris’가 제대로 만들어진 인티앰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들은 1) 162W라는 넉넉한 출력, 2) 파워앰프부 전압증폭단의 순결한 1단 증폭, 3) 트리플 푸쉬풀을 통한 출력단의 대전류 드라이빙, 4) 듀얼모노로 구성된 파워서플라이의 듬직한 전원공급능력임이 분명하다.







‘두 서로 다른 성향의 하이엔드 스피커 2조를 번갈아 운용하며 내 앰프의 밑바탕을 끝까지 추적하며 음미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오디오파일들이 꿈꾸는 궁극의 목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필자가 만약 이러한 ‘내 생애 마지막 인티앰프’로 몇가지 후보를 올린다면 ‘Osiris’는 무조건 들어간다. ‘Osiris’에서 필자는 순도와 구동력, 음악성과 해상력이라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고 말았다. ‘Osiris’에 진정 감탄했다.

 
- 김편